나는 왜 ‘자위권’이라는 단어가 불편한가
‘자위권’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던 때였다.
아직 학생이던 나는 그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지만,
그 단어가 쓰인 문장에선
항상 어딘가 찝찝한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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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衛權.
스스로 지킨다는 뜻이다.
몸을 보호하고, 생명을 지키는 권리.
그 자체로는 결코 나쁜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단어가 ‘발포’와 함께 쓰일 때,
나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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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어떤 날.
광주의 도청 앞,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 중 다수는 무기를 들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그때를 살지 않았지만,
그들이 겪었을 두려움은
지금의 겨울바람 속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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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기록들을 보면
‘자위권 발동’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군이 위험에 처했기에 발포했다는 설명.
하지만 내 마음엔 늘 다른 질문이 맴돈다.
“그 발포는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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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군가,
실제로 두려웠을 수 있다.
현장의 군인들, 시민들, 모두가.
하지만 누군가는 그 상황을 더 멀리서,
더 크게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멈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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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그 시절을 지나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속에 남겨진 단어 하나—‘자위권’—을
지금도 곱씹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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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단어는 법률 속에서도, 뉴스 속에서도 여전히 쓰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단어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단어 뒤에 숨어버린 이름들과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