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피딕]
오래전,
글렌피딕 한 병이
선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평소엔 접하기 어려운,
꽤 비싼 술이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집사람이 부부동반 모임에
그 술을 가져가자고 했다.
모임이 시작되면
술병의 ‘주인’은
이거 내가 가져왔다며
은근슬쩍 폼을 잡아야 한다.
술잔을 돌리며
한 잔씩 따르겠지.
하지만 술을 즐기지 않거나
독한 맛을 꺼리는 사람은
잔을 살짝 입에 대고
그대로 내려놓는다.
그 순간,
비싼 술 한 잔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다시 병에 담을 수도 없고,
억울하다 못해 아깝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이런 술은
술맛을 아는 사람과
단둘이 마셔야 한다고.
괜히 폼 잡고
허세 부릴 필요 없다.
진짜 아는 사람은,
잠을 놓친 새벽녘에
온더락 잔에 한 모금 따르고
치즈 조각을 깨무는 그 맛을
조용히 즐긴다.
세상엔
그 맛을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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