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서 베풀기
[꼰다리]
지하철을 타면
문득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좁디좁은 객실 안에서
한쪽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는 사람.
그 다리는 대체로
[앞으로 튀어나와 있습니다.]
작은 발 하나가
의외로 많은 공간을 차지하죠.
승객 한 명이 꼰 다리 때문에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면
그 여파는 곧바로
[뒷공간]의 답답함으로 번져갑니다.
더 안타까운 건,
그 다리를 꼰 주인공이
대부분 [20대 청년]이라는 점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또는 너무 익숙하게
핸드폰에 머리를 푹 묻은 채
다리는 꼬인 채로
절대 풀릴 기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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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상상해봅니다.
“승객 여러분의 안전과 편의를 위하여,
앉아계신 분들은 다리를 꼬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앞에 서 계신 분들의 공간을 배려해 주세요.”
역무원의 이 한마디 방송만으로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꼰다리]를 풀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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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백팩]을 앞으로 메라는 방송에는
순순히 반응합니다.
그게 배려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꼰다리]는 왜 아닐까요?
그 역시 공간을 침범하는
‘작지만 확실한 민폐’인데.
사소해 보이지만,
지하철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는
그 다리 하나가
타인의 하루를 답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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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는 거창한 행동이 아닙니다.
다리를 푸는 그 순간부터,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시작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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