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고양이]
학원으로 출퇴근할 때마다
새끼 고양이를 자주 맞닥뜨린다.
어미 품에서 이미 자립을 했는지
제대로 먹지를 못해
뼈다귀가 앙상하게 남아
보기에 여간 측은한 것이 아니다.
반면 어미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비만 형태를 보이고 있다.
새끼가 젖을 떼고
혼자 먹이를 찾아 먹을 때가 되면
과감하게 새끼를 버린다.
다음 [생산]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동물의 왕국에서 본 적이 있다.
인간처럼 공부 다 시키고
장가 보내고 생활비 대주고
손주까지 키워주는 극성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겨울에
신기한 것을 보았다.
화물차가 슈퍼 앞에 정차를 하니까
다른 차 밑에 있던 고양이가 쪼르르
화물차 밑으로 들어간다.
엔진의 열을 이용하여
옮겨 다니면서 체온을
유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모든 차들이 식어버리는
새벽에는 어떻게 할까 궁금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 나중에 확인된 바로는
보일러실 구석에서 잔다고 함
깡마른 어린 새끼가 안쓰러워
학원에 갈 때마다
우리집 강아지 몽구의 먹이를
새끼가 오가는 길목에
놔주기 시작했는데
학원이 끝나고 귀가할 때 보면
싹 없어졌다.
흐뭇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나만 먹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꼬마들에게도 있었는지
지가 먹던 우유를 주기도 하고
새우깡도 주고 떡볶이도 준다.
며칠 뒤에 본 새끼 고양이는
이미 통통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새끼 고양이가 나를 [견제]하면서도
아이들과는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순수한 [동심]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고양이과도
통하는 모양이다.
대지의 작가 펄벅이
한국에 왔을 때의 일이다.
나무 위에 남아있는 감을
왜 안 따느냐고 물으니
안내자가 까치를 위해
남겨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농부는
왜 소를 안타고 걸어 가냐고 물으니
소가 힘들어 할까봐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는
펄벅은 혼자 중얼거린다.
- 애니멀니즘.
소를 타지 앉고
끌고 가는 농부의 행동은
나도 미처 생각 못한 질문인데
작가의 안목과 시야는
이렇게 일반인의
사고를 뛰어넘고 있다.
그 애니멀니즘이
우리 [천진난만]한
꼬마들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날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제 몽구 먹이를
훔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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