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구의 여자친구]
큰 놈이 대학 3,4학년 때이다.
아르바이트로 중학생
전 과목 지도를 했는데
이 놈이 성적이 쑥쑥 올라
그 어미가 좋아했다.
그 집에 있던 슈나우저가
새끼를 3 마리를 낳아
그 중에 한 마리를 얻어온 놈이
몽구란 놈이다.
견종은 슈나우저로
딱!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새끼 중에서 가장 활발하고
까부는 놈으로 골라오라고 했다.
나의 선별은 적중해서
나중에 들으니 몽구의 다른 형제들은
심장병이 있어 뛰지도 못하고 있단다.
몽구는 夢狗라고 쓴다. 꿈몽, 개구..
개라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혹자는 현대 자동차의 정몽구에
감정이 있냐고 묻기도 하는데
전혀 상관이 없는 작명이다.
3 개월째에 젖을 떼고 온 이 놈은
지가 깔고 있던 담요에 푹 싸여 왔는데
지 어미의 내음이 배겨있기 때문이다.
크기도 아주 작아 내 셔츠
윗주머니에 넣으면 쏙 들어갔다.
감기에 걸려서 주인이
감기 주사까지 보내주었는데
차마 바늘로는 찌르지는 못하겠고
가습기를 가동하고 매끼마다
우유를 타서 먹이면서
정성스럽게 키웠다.
지금에 와서 당시의 일을 생각하니
얼마나 큰 정성과 사랑으로
키웠는지 가슴이 뭉클하다.
비틀비틀 걷기 시작하더니
이내 재롱둥이가 된다.
이가 나면서 잇몸이 가려운지
내 손을 수도 없이 물어뜯는다.
어린 새끼다 보니
별다른 저항 무기가 없는 대신
이빨은 대단히 날카로워
살짝 물려도 피가 맺힌다.
원래 동물은 워낙 먹성이 좋다.
8개월만 되면 몸이 다 자라고
번식 능력을 갖추게 된다.
병원에서는
미니어쳐로 키우기 위해서는
먹이를 아주 조금 주라고 권한다.
어느 정도 성견이 될 때까지
이 놈은 배를 곯고 살았다.
그래서 먹이를 주면
거의 환장을 하면서 제 정신이 아니다.
먹는 모습이 귀여워서
비디오에 담아 놓았는데
볼 때마다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불쌍해서
지금은 넉넉히 먹도록 해주고
아침마다 우유도 듬뿍 준다.
냠냠 잘 먹는다.
이렇게 두어달 정이 들어
병원에 가니 [거세] 수술을 권한다.
젊잖은 말로는
[중성화] 수술이라고 한다.
발정기가 되어 집을 나가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게다가 생식기가 빨갛게 튀어나와
미관상 보기도 그렇단다.
길거리에 납짝 깔려
포가 된 죽은 동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먹이고 키우는 것은 우리 부부지만
정식 주인은 얻어온 큰 아이다.
그래서 호주에 어학연수 가 있는
큰 아이에게 메일로 승낙(?)을 받아
거세 수술을 단행 했다.
마취를 하면 길게 뻗는다.
혀가 목으로 말려 들어갈까 봐
머리를 옆으로 누이고 혀를 밖으로 뺀다.
아직 어려서 고환이
밖으로 돌출되어 있지 않다.
고환이 있는 부분을
예리한 메스로 가른다.
고환이 2개므로 당연히 두 군데 짼다.
의사는 손으로 꾸물럭꾸물럭하더니
고환을 꺼내는데 크기가
성냥 대가리 정도이다.
핀셋으로 잡은 후 가위로 자르고
절단된 부위를 뜨거운 것으로 지진다.
귀도 반으로 자르는 성형을 하라고
권하는데 너무 잔인한 것 같아 거절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먹이를 주니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놈은 제 몸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도 모르고 있다.
혹시 너무 야만적인 행위가
아닌가 반성을 하다가
유럽에서는 다 그렇게 한다는
의사의 말로 위안 삼는다.
몽구는 무럭무럭 자란다.
여러 가지 재주를 키웠는데
‘고추!’하면 발랑 누워서
고추를 만천하에 보여주는 것이
지금도 써먹는 레파토리이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그 놈에게 한 조각이라도 안 주면
바로 옆에서
고추를 내보이고 시위를 벌인다.
참 웃기는 놈이다.
세월은 유수같이 흐르고
몽구도 몸집이 거의
어른의 꼴이 된 어느 날,
집사람으로부터
숨넘어가는 전화가 왔다.
슈나우저 암놈 한 마리를
집앞에서 주워왔다는 것이다.
암놈? 순간 몽구가 떠오른다.
몽구에게 얼마나 신선하고
즐거운 생활이 될까.
음양의 화합은 지구상의
모든 동물에게 해당된다.
거리에서 주워왔으니
무슨 병이 있을지도 몰라
깨끗이 목욕을 시켜놓으라고 했다.
학원이 끝나는 대로
부랴부랴 집으로 간다.
근데 이 놈 성격이 참으로 활달하다.
처음 보는 내게
온갖 애교와 아양을 부린다.
털 색깔을 보니 몽구와
거의 같은 종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놈의 출처를 알아야 한다.
잘못하면 절도죄가 성립된다.
경비원에게 물으니
옆동에서 버린 개란다.
그래서 녹화된 영상을 확인해보니
주인이 개를 밖에다 버리면
이 놈은 징징거리며
다시 주인집으로 찾아가고
그러면 주인이 또 버리고..
이 과정이 반복되니
유기하는 것은 틀림없다.
새로운 식구를 맞아
이름을 몽자라고 짓고
몽구와 친해지도록 하려고 하는데
몽구의 견제 심리가 보통이 아니다.
무뚝뚝한 몽구와 달리
붙임성이 많은 이 놈과
자주 놀아주게 되는데
이럴 때마다 몽구는 옆에 와서
으르렁거리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결국 몽구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불편한 심사를 얼굴 가득 나타내고 있다.
잘 안 보이는 주름은 큰 아이가 발견했다.
개 얼굴에도 희노애락의 표정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한참 같이 놀고 있는데
이 놈이 생리혈을
질질 흘리는 게 아닌가.
비로소 주인이 버린 이유를 알겠다.
그렇다고 당연한 생리현상인데
정든 놈을 버려?
이해가 안 되는 주인 놈이다.
그나저나 때도 없이 흘리는
생리혈을 닦아내느라
점차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저녁에 첫날밤을 보내면서 보니
이 놈은 침대 위로 안 올라온다.
몽구는 천방지축 망나니처럼
침대 위에서 거침없는데
몽자는 침대 모퉁이에
다소곳이 앉아 구경만 한다.
같이 놀자고 몽자를
침대 위로 끌어올렸더니
몽구의 으르렁거리는
위세가 장난이 아니다.
자기 영역이라는 뜻이다.
또 하루는 거실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낮잠을 자는데
역시 몽자는 이불 위에 안 올라오고
모퉁이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다.
식사 중에도
식탁 옆에 조용히 앉아
주인의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가끔 영화에서 보았던 명견의 폼이다.
반면 몽구를 혀를 헬헬 거리며
나도 좀 같이 먹자고
구걸 아닌 구걸을 하면서
발톱으로 주인의 팔을 박박 긁어댄다.
영락없이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잡종의 폼이다.
비로소 몽자를 길렀던
주인의 꼼꼼한 성격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식탁에는 근처에도 못 오게 하지
잠자리에도 역시 근접을 금한다.
이런 주인이 질질 흘리는
생리혈에 기겁을 한 것이다.
소파에도 묻히고
이 방 저 방 흘리고 다닌다.
거세 당해 암놈의 필요성(?)과
존재 이유를 못 느낀 몽구는
한 달이 지나도록
몽자와 친해지지 못 한다.
그렇게 낮잠을 즐기던 녀석이
낮잠도 전폐하더니만
수척해지고 성격도 거칠어졌다.
가족회의 끝에,
몽구의 심리적 안정과
성격 발달을 위해
몽자를 다른 집에 주기로 했다.
둘째 아이의 친구 집으로
적을 옮긴 몽자는
새끼도 낳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풍문에 듣는다.
가슴이 뭉클하다.
시집보낸 딸처럼
가끔 보고 싶어지는 것은 왜일까.
정이란 것이 이토록 진한 것이다.
몽구는 낮 동안 더운 집에서 혼자 외롭다.
그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집사람이 이 더위에도
매일 빠짐없이 공원에
데리고 나가는 수고를 한다.
몽자와 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는 무더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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