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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Dec 21. 2023

강의에 대하여, 청중과 강사

  강의는 할 때마다 같은 강의가 단 한 번도 없다. 일단 매번 강의를 듣는 대상이 바뀐다. 입시를 다루는 강의이기에 학부모들이 대상인 경우가 가장 많다. 그 다음은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교사들을 만날 때도 있다.



  강의하기 가장 힘든 청중은 단연 교사들이다. 특히 고3 담임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는 마음을 미리 비운다. 고3 경험이 적은 교사들을 바라보며 강의를 진행한다. 고3 입시 지도 경험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강의를 아예 듣지 않거나 건성으로 듣는다. 자신들만의 지도 전략과 루틴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학교 전체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일단 교사들은 강사와 가장 먼 곳부터 자리를 잡는다. 어떤 학교에 가든 똑같다. 강의 시간 직전에 오는 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앞쪽을 채운다. 나에게서 어떤 유해 물질이 나오나? 싶을 만큼 거리를 두고 강의를 할 때도 있다. 수행평가 채점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조는 교사들도 있다. (많다, 라고 적고 싶지만 같은 교사끼리 그건 좀 너무하다 싶다) 



  듣는 사람이 적을수록, 나에 대한 관심이 없을수록 나는 더 열심히 한다. 이런 얘기를 듣지 않는다고? 이렇게 좋은 정보를 흘려버린다고? 그럴 수 없을 텐데? 같은 마음으로 강의를 한다. 그러다보면 처음엔 듣지 않다가 자세를 고쳐 잡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럼 더 열정적으로 한다. 듣는 사람이 늘어난다. 더 열심히 한다. 청중과 내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강의가 흘러가는 거다. 



  반대로 가장 강의하기 좋은 청중은 단연 학부모들이다. 학부모들은 언제나 입시 정보를 필요로 한다. 자녀의 성적과 상관없이 모든 학부모들은 양질의 정보를 원한다. 그 필요성 덕분에 강의 내용만 유익하다면 더 바랄 것 없는 고마운 청중이 된다. 내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면 나는 더 열심히 한다. 흥이 난다. 더 많은 정보를 드릴게요, 이것도 가져가시고 저것도 가져가세요, 같은 마음으로 강의를 한다. 그러다보니 약속된 강의 시간을 넘기거나 미처 뒷부분 내용을 다 끝내지 못할 때도 있다. 청중과 강사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거다. 



  강의는 생물이다. 살아있다. 강의 내용과 전달력이 청중에게 닿으면 청중은 집중과 몰입으로 화답하고 강사는 그걸 통해 힘있게 강의를 끌고 나간다. 그래서 강의가 재밌다. 한 번도 같은 강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힘들다. 강의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런데 또 하고 싶다. 내 뇌가, 불확실성 속에 나를 넣고, 도파민을 뿌리는 거다. 



  오늘 올해 마지막 중학교 강의를 간다. 청중은 학생들. 중학생 200여명을 모아 놓고 1시간 반 이상 강의를 이끄는 일? 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단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모른다. 예측이 어렵고, 여러 상황이 터진다. 그럼에도 끝까지 끌고 가는 재미가 있다. 



  오늘 강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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