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회장 취임행사를 마치고, 일행을 픽업하기 위해 현관으로 향했다. 차량 대기 줄이 길어 나는 추월 차선에 잠시 차를 세웠다.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가 보였다. 품에는 핸드백과 백팩, 쇼핑백에 두툼한 코트와 화사한 꽃다발까지 짐이 한가득이었다.
친절한 도어맨이 기민하게 뛰어와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뒤차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 그녀가 안전하게 승차하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짐의 부피가 커서 간신히 자리에 앉은 그녀는 꽃다발이 상할까 조심조심 매만졌다. 뒷좌석으로 짐을 옮겨주면서 출발하느라 나는 정작 꽃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그때 그녀가 수줍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이쁘죠?”
나는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네, 이사님은 오늘도 예쁘네.”
워낙 친근한 사이라 평소에도 아낌없이 칭찬해 주는 편이다. 특히 오늘은 큰 행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했다는 격려와 행사장 안에서 누구보다 빛났던 그녀의 역할에 대한 덕담을 담은 대답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정겨운 대화가 이어졌다. 평소 내 글을 아껴 읽어주는 구독자인 그녀와 나의 글쓰기 이야기를 했다. 올림픽대로를 지나며 성수동의 발전상황, 직장 업무, 그리고 나의 선배이자 그녀의 상사인 사장님의 건강 걱정까지 주제는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문득 아차 싶어 혼자 조용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물은 것은 자신이 아니라, 네온 불빛 아래 붉게 빛나는 촘촘한 꽃다발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내 덕담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건, 아마 그녀 역시 꽃이 예쁘다는 내 동의로만 알아들었을 것이다. 나처럼 “……예쁘네”라는 끝말만 귀에 담았기 때문이리라.
사실 오늘 행사장에선 사회자가 시간에 쫓긴 나머지 "일동 묵념"과 "바로"를 1초의 간격도 없이 외치는 바람에 웃음이 터진 것 외엔 별로 웃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 사소하고 예쁜 오해가 다시금 마음속에 진짜 웃음을 피워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 문자가 도착했다.
[덕분에 편하게 귀가했습니다. 제가 너무 조잘조잘 떠들었죠?]
그녀의 귀여운 인사에 다시 한번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다. 엉뚱한 오해와 정겨운 대화로 물든 하루의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