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두 섬, 그곳에 늘 계셨던 당신

by 박성기

인생의 두 섬, 그곳에 늘 계셨던 당신



최근 사업을 시작한 아들과 함께 강화 보문사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43년 전, 제가 청춘을 바쳐 군 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눈썹바위에서 낯익은 서해안의 평온한 여러 도서의 풍경을 바라 보니 빛바랜 추억들이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게 밀려왔습니다.



저의 인생을 돌이켜보니 크게 두 지점으로 나뉩니다. 군대에 가기 전의 비포장도로 삶이 가까이 보이는 작은 섬 ‘소송도’라면, 군 생활 이후의 탄탄대로의 삶은 그 곁의 커다란 섬 ‘대송도’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 섬들을 들여다보니, 그곳엔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의 어머니입니다.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먼 과거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제 인생의 첫 기억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핀으로 고정하고 홀로 학교 교문으로 향하던 여섯 살 소년의 뒷모습. 그 꼬마 아이가 어느덧 노년이 되어 인생 전체를 반추하며, 곁에 선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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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전의 어머니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어머니는 유독 손주인 제 아들과 정이 깊으셨습니다. 아들이 태어날 때 귀가 머리에 눌려 나오자, 병원에서는 ‘기형’이라고 진단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고의 세월 동안 매일같이 그 작은 귀를 손으로 만지고 펴주셨고, 결국 ‘정상’으로 만들어내셨지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당신의 사랑은 저를 넘어 제 자식에게까지 조건 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아가지만, 감히 저만큼 어머니의 은혜를 온전히 입은 사람도 드물 거라 자부하는 이유입니다.



어머니와 작별한 지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번도 어머니와 헤어졌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뵙지 못한 시간이 조금 길어지고 있을 뿐이라 믿으며 지내왔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어머니가 그리운 건, 인생 이야기를 쓰며 당신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저를 지탱해 준 것은 결국 어머니의 한마디였습니다. “너는 잘 될 끼다. 항상 반듯하게 살아라.”



그 투박한 사투리 속에 담긴 믿음이 저를 반듯하게 세웠고, 오늘날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 ‘김순임이’ 여사를 마음속 깊이 ‘김사임당’이라 부릅니다.



제 인생의 소송도와 대송도를 비추던 그 따스한 햇살이, 이제는 어머니가 그토록 아끼셨던 제 아들의 앞길에도 찬란하게 이어지길 기도해 봅니다.


어머니, 오늘은 유독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KakaoTalk_20260104_003007726_02.jpg?type=w1 소송도 대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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