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히지 않는 하루: 1982년 11월 20일

by 박성기


평생 잊히지 않는 하루: 1982년 11월 20일



1982년 11월 20일은 내가 정의로운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난 날이다. 그래서 그날은 '평생 잊히지 않는 하루'였다. 포항 해병대훈련단, 나는 그날 처음으로 ‘빨간명찰’을 달고 해병이 되었다. 180일간, 24주의 지옥 훈련을 견뎌낸 130명의 해병부사관 동기생 중 한 명으로서 말이다. 그날은 내가 내 삶의 모든 불공정과 비겁함을 뚫고 나와, ‘정의’라는 새 이름을 얻은 날이었다.




세상은 내가 정의의 뜻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불공정의 쓴맛을 먼저 가르쳤다. 경시대회에서의 부당함, 아버지의 보증 늪, 그리고 학장동 골목길에서 겪은 부당한 폭력까지... 성실하게 일했다는 이유로 매를 맞으며 쓰러졌던 가야동 육교 위에서 나는 보았다.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이라는 플래카드를.



그날은 허울뿐인 구호에 기대지 않고 내가 직접 힘을 길러 선한 이들을 지키는 방패가 되겠노라는 결심의 끝에서 맞이한 수료식 날이다. 나는 158기 최우수 부사관으로서 식장에 모인 수많은 민간인과 가족들을 마주했을 때, 내 심장은 터질 듯 고동쳤다.




‘저분들이 바로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국민이구나.’



그날 나는 하늘 앞에 맹세했다. 내게 주어진 이 힘을 불의에 눈감지 않으며,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 기꺼이 나를 던지겠노라고. 그날 가슴에 단 빨간 명찰은 나에게 평생을 두고 지켜야 할 정의의 훈장이었다.



군인으로서 석모도 해안선을 누비며 어민들의 부당한 관행을 끊어냈다. 풍랑 속에 찾아온 친구의 발길을 돌려세웠던 결단은 모두 그날의 맹세에서 시작되었다.



평생 공익을 위한 일을 하면서 지금도 매일 거울 속의 나에게 묻는다.



“너는 그날의 빨간 명찰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1982년 11월 20일, 청년 해병의 외침은 지금도 내 삶을 성실하고 굳건하게 지탱해 주는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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