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향기 하나가 데려간 장소: 강남역 꽃집
해마다 3월 말이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향기'가 있다.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도심의 공기를 뚫고 알싸하고도 달콤하게 퍼지던 프리지아(Freesia) 향기를 나는 기억한다.
그 향기를 따라 나는 강남역 12번 출구, 지금은 사라져 버린 단골 꽃가게로 들어선다. 꽃집이 흔치 않던 시절에도 나는 그곳을 찾아 프리지아와 장미를 사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 향기를 맡으면 어김없이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떠올린다.
탐스러운 프리지아 한 다발을 품에 안고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언제나 설레었다. 한순간 존재하나 싶더니 다음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얼음처럼 세월은 속절없이 흐른다. 사람은 누구나 그 얼음 조각이 녹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내에게 바친 노란 꽃다발의 향기는 우리 가족을 지탱해 온 견고함으로 남아 있다.
프리지아(Freesia)의 꽃말은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I support your new beginning)"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하는 모든 서툰 시작을 온 마음 다해 응원하고 싶었다. 서로를 향한 정성이면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었다. 그것은 아내를 향한 사랑의 응원인 동시에, 나 자신과의 굳은 약속이기도 했다.
그 눈부신 노랑과 신비스런 향기가 좋아서, 나는 신혼여행길 자동차 안을 프리지아로 가득 채웠다. 차 안을 수놓았던 그 찬란한 색채와 향기로 우리 부부와 태어날 아이들을 축복하고 싶었다.
땀 냄새 가득했던 나의 삶을 묵묵히 지탱해 준 아내와 세 아이들에게, 매년 봄 프리지아의 향기와 함께 감사함을 전한다. 얼음은 녹아 사라져도 그 물이 대지를 적시듯, 프리지아 향기는 내 인생의 소중한 연결고리가 되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