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보지 않았지만 계속 떠오르는 곳: 퍼스(Perth)
한 번도 발을 디뎌보지 않았음에도 유독 마음이 머무는 장소가 있습니다. 호주 서부의 끝, 퍼스(Perth)가 저에게 그런 곳입니다. 소문으로 들은 아름다운 풍광 때문이 아닙니다. 그곳이 가진 이름의 무게와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마음에 들어서입니다.
‘퍼스’라는 지명에 담긴 유래가 좋습니다. 켈트어로 ‘높은 곳(The High Place)’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낮은 곳에 있지만 더 높은 가치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했던 저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퍼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도시’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그 고립은 단절이나 외톨이가 아닌 자부심이 되어 좋습니다. 시민들은 우주비행사 존 글렌을 위해 도시의 모든 불을 밝혔다고 합니다. 1962년의 퍼스를 사람들은 ‘빛의 도시(City of Light)’라고 했습니다. 외딴곳에서 우주에서도 보일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거기가면 그때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제가 퍼스를 꿈꾸는 이유 중에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이 즐기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시드니에서 대륙 횡단 열차 ‘인디언 퍼시픽’에 몸을 싣고 4,352km의 퍼스 길을 왕복하고자 합니다. 열차 창밖으로 스치는 블루마운틴의 험준함과 눌라보 평원의 끝없는 수평선을 일주일간 내내 관찰하고 싶습니다. 지형을 보면 그 땅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대지의 굴곡을 읽어 내려가는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퍼스의 흑백조(Black Swan)에서 동질감을 찾아갑니다. 평온한 수면 아래에서 쉼 없이 발을 저어 나아가는 백조의 운명이 저의 삶과 닮았습니다.
가보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속에 선명한 그곳. 언젠가 인도양의 붉은 노을 아래 서서 지나온 길을 갈무리할 날을 기다립니다. 그날이 오면 행복한 마침표를 찍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