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로빈스의 ‘렛뎀 이론’에서 발견한 우리어머니의 원형

by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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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로빈스의 ‘렛뎀 이론’에서 발견한 우리 어머니의 원형(原型)>



멜 로빈스의 저서 를 읽어가며 무릎을 칩니다. 동서양의 상황이 모두 일치할 수는 없지만, "Let Them(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라)"는 의미의 본질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이 두 단어는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지혜를 깨웁니다. 사실 이 태도는 제게 낯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제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던 익숙한 철학이었습니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니, 그곳엔 평생을 '렛뎀'으로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1927년생 어머니가 건넌 격동의 강


저의 어머니는 1927년에 태어나, 국권이 상실되던 1910년생인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을 겪으셨고, 전쟁 중에 외할아버지를 잃는 비극도 겪으셨습니다. 그 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이 모두 그러했듯, 잔인한 시대의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내신 분이 바로 저의 어머니(1927-2006)입니다.



어머니의 삶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아비규환 속에서도 자식들에게만큼은 불안을 전이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전쟁의 여파로 생존의 공포가 문 앞까지 닥쳐와도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상황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어머니는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시대적 비극은 그대로 흐르게 두고(Let them), 그 안에서 자식이 자기만의 닻을 내릴 수 있도록 믿음과 희생으로 5남매를 지켜내셨습니다. “상황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라며 흐르게 두신 그 마음이 신체적 방어막이 되었습니다. 8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5남매를 모두 번듯하게 키워낼 에너지를 비축해 주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남다른 교육열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말라는 어머니만의 가장 숭고한 '렛뎀'의 실천이었습니다.



2006년 당시의 평균 수명 통계로만 보면 평범해 보일지 모르나, 1920년대에 태어나 전쟁과 굶주림이라는 비정상적인 사망 요인들을 모두 뚫고 80세에 도달한 것은 대단한 승리였습니다. 어머니는 숫자에 갇히신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주어진 생명력을 100% 연소하여 가문을 꽃피우신 것입니다. 어머니의 80년은 결코 평균 ‘이하’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여성 중 가장 단단하고 깊은 ‘이상(理想)’의 삶이었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렛뎀 어머니’들의 지혜


명절을 맞아 어머니의 삶을 반추하다 보니, 역사 속에서도 이와 닮은 꼴인 어머니들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집착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가장 위대한 결실을 보았습니다.




겸재 정선의 어머니, 밀양 박씨: 전략적 인내의 승리


우리 집안의 어른이자 겸재의 외조부 계열인 영의정 박승종은 광해군 시절 '소북'의 영수로 권력의 핵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이라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가 닥쳤을 때, 그는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큰아들 박자응과 함께 자결을 택함으로써 가문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그것으로 남은 후손들이 '멸문지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이가 바로 박승종의 손녀이자 박자흥(박승종의 둘째 아들)의 딸인 밀양 박씨 부인입니다. 그녀의 언니는 광해군의 세자빈이었습니다. 반정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후일 국왕의 처제로서 조선에서 가장 귀한 여인 중 한 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광해군의 세자와 세자빈인 박씨부인의 언니는 유배지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아버지 박자홍은 처형되었으며, 집안은 '역적'의 멍에를 쓴 채 멸문 수준으로 몰락했습니다.



이토록 처참한 상실감과 억울함 속에서 그녀가 선택한 길은 복수나 원망이 아닌 놀랍게도 '렛뎀(Let Them)'이었습니다. 그녀는 화려한 과거를 흐르게 두었습니다. 가난한 선비 정시익에게 시집와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그녀는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녀의 혜안이 빛난 지점은 장동(壯洞)을 떠나지 않고 버틴 것입니다. 당시 장동은 인조반정의 주역이자 실세였던 안동 김씨(김상헌의 후손들)가 모여 살던 권력의 중심지였습니다. 어찌 보면 역적의 가문으로 몰락한 여인이 원수들의 소굴이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버티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을 원망하며 은둔하는 대신, "세상의 흐름이 그러하니, 인연이 닿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라며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여기에는 사실 박씨부인의 다음과 같은 선택적 전략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장동은 박승종으로 연결되는 친정과도 관련이 있지만 사실 장동은 시고조부 정유길의 텃밭이었습니다. 정유길은 자신의 친구인 김생해(안동김씨 중시조)의 아들 김극효를 사위로 맞아 키우고, 김극효는 김상헌을 낳습니다. 김상헌의 손자가 영의정 김수항인데, 김수항의 아들 여섯 명, 육창이 모두 겸재를 후원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은 재재종간이었습니다.



나아가 그녀는 아들 정선에게 당시 모든 양반의 집착이었던 '과거 시험'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가문을 다시 일으키려면 급제가 유일한 길이었음에도, 그녀는 아들이 붓을 잡고 산천을 그리도록 두었습니다(Let him). 이 '전략적 방치'와 '인내의 렛뎀'은 결국 기적을 낳았습니다. 장동을 지켰기에 이웃인 안동 김씨 가문의 든든한 후원을 받을 수 있었고, 이 믿음이 '진경산수화'라는 불멸의 예술을 낳았습니다. 그녀는 93세의 경이로운 천수를 누리며 아들이 화성(畵聖)이 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숙빈 최씨(최동이): 낮춤과 기다림의 결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역시 같은 궤의 렛뎀을 실천한 인물입니다. 그녀의 삶은 당시 궁중의 가장 치열한 권력 투쟁이었던 '희빈 장씨'와의 대비를 통해 그 위대함이 선명히 드러납니다. 희빈 장씨가 아들을 반드시 왕좌에 앉히겠다는 강박적 집착(Control)에 사로잡혔다면, 숙빈은 아들 연잉군(영조)을 권력의 탐욕과 시기 질투의 소용돌이에서 과감히 멀어지게 두었습니다(Let him be away).



숙빈은 아들에게 "왕이 되어야 한다"라는 압박 대신, 스스로를 낮추고 세상의 흐름을 관조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궁궐의 담벼락 너머 진짜 세상을 만나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청년 시절의 영조는 신분을 숨긴 채 저잣거리의 활기를 느끼고, 남산 남촌의 가난한 선비들과 어울리며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영조가 맺은 가장 귀한 인연이 바로 평생의 동반자인 암행어사의 대명사 박문수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의 운명을 억지로 쥐고 흔들지 않고 흐르게 둔 덕분에, 영조는 궐 안의 이론이 아닌 궐 밖의 실천을 배운 '준비된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숙빈은 끊임없이 자신을 시기하는 무리 앞에서도 맞서 싸우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의 시기는 그들의 몫으로 흐르게 두고, 너는 네 마음을 닦아라"





영조가 당쟁의 한복판에서도 '탕평책'을 펼치며 52년이라는 조선 역사상 최장기 재위 기간을 기록하고 83세까지 장수한 비결은, 바로 어머니가 물려준 '내면의 평화를 지키는 렛뎀'에 있었습니다.





내 안의 렛뎀을 발견하다


제가 감히 스스로를 영조나 겸재에 비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어머니를 역사적 위인과 견주려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고난을 겪으며 인생을 오래 산 이들이 공통적으로 도달하는 '렛뎀'이라는 정신적 원형(原型)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흐르게 두는 지혜. 그 지혜가 있었기에 우리 어머니들은 비극의 시대를 기도로 품어내며 자식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멜 로빈스의 책을 통해 저는 제 안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렛뎀의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어떤 법적 다툼이나 복잡한 관계 앞에서도 "상대가 저러는 것은 저들의 몫으로 두자"고 마음먹을 수 있는 내공은, 결국 어머니의 80년 생애가 제게 물려준 가장 단단한 유산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무언가를 억지로 바꾸려 애쓰고 있지는 않나요? 때로는 "Let them(그렇게 두라)"이라고 고 나직이 읊조리는 것이 가장 강한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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