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밖의 후손: 경복궁 외곽을 돌며 묻는 ‘왕의 자리’>
명절 연휴, 주말 부산 출장을 준비하다 글쓰기 코치로부터 ‘글감’을 받아든다. ‘오늘 하루가 여행이라면,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라는 주제다. 나의 발걸음은 주저 없이 경복궁으로 향했을 것이다. 우연히 간밤에 집필한 조선 건국 초기의 비극과 수서동 필경재의 치유가 오늘이라는 휴가와 만났기 때문이다.
사대문을 걷다: 왕이 보지 못한 법궁의 의미
나는 경복궁 외곽을 두 바퀴 거닌다. 궁 안의 왕들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을 그 담장 밖의 풍경을 따라 담장 안을 들여다보는 여행이다. 밖에서 바라보는 전각들은 지붕 끝만 간신히 보이거나 담장에 가려져 있기도 한다. 그것은 권력이란 안에서 볼 때만 절대적일 뿐임을, 밖에서 보면 그저 역사의 풍경일 뿐임을 깨닫게 한다. 나는 ‘담장 밖의 후손’으로서 이 길을 걷는다.
신무문의 조바심, 영추문의 설렘
내 발길은 신무문(神武門, 智-현무)에 머문다. 지혜를 상징하는 이곳은 왕의 사적 공간과 가장 가까운 통로다. 송강은 <관동별곡>에서 연추문(延秋門, 영추문)으로 들이달아 경회 남문(慶會南門, 자자문)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그의 숨겨진 조바심을 상상하며 읽어본다.
담양 창평에서 달려 북문을 마주한 송강이 한시바삐 선조를 알현하고 싶어 했을 그 간절함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하루빨리 선정을 베풀고자 하는 의지의 투영이었을 것이다.
그 문 건너편, 오늘날 청와대를 드나드는 정치인들을 본다. 후손의 눈으로 그들에게 역사의 메시지를 알려주고 싶다. 당신들이 통제하려 애쓰는 그 권력의 자리가 얼마나 덧없는지를. 정철이 옥절을 들고 나섰던 영추문(迎秋門, 義-백호)은 비상의 통로였으나, 이방원에게는 혈육을 베었던 참극의 현장이었음을 말이다.
통제의 화살을 내려놓자
우리는 상처받고, 소외되고, 두려울 때 세상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성계가 함흥에서 쏘아 올린 화살은 결국 아들의 심장을 뚫지 못한 채 깊은 회한으로 남았다.
나는 오늘 경복궁의 신무문(智), 영추문(義), 광화문(禮-주작), 건춘문(仁-청룡)을 돌며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건넨다. 광화문의 ‘예법’으로 민심을 살피고, 건춘문의 ‘어짊’으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이제 나는 옥절을 들고 관동으로 떠나던 정철처럼, '출장길'이라는 증거를 찾는 새로운 서사를 향해 나아간다. 왕들이 보지 못한 궁궐 밖 길을 두 바퀴 돌며 얻은 이 평온함이, 주말의 출장 길을 유익한 업무 여행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