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때 떠나고 싶은 장소: 북한산 비봉(碑峰)

by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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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 때 떠나고 싶은 장소: 북한산 비봉(碑峰)



삶의 무게가 무거울 때마다 내 마음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북한산 비봉(碑峰)이다. 해발 560m의 이 웅장한 바위 봉우리는 서기 555년, 신라 진흥왕이 세운 순수비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곳은 자연경관도 뛰어나지만, 나의 소중한 추억과 고대 군주의 철학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비봉과의 인연은 1980년대 중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시작되었다. 구기동 계곡과 승가사를 거쳐 처음 마주한 비봉 정상의 바람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청량하다. 그 강렬하고 부드러운 첫인상 이후, 나는 ABC 캠프 훈련이나 설산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수없이 이곳을 오르내렸다.



비봉은 북한산 주능선의 핵심축으로, 족두리봉부터 백운대, 인수봉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한쪽으로는 구기동의 평온함이, 반대쪽으로는 불광동의 깊은 계곡이 대조를 이루는 풍경은 지친 나에게 해방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내가 비봉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그곳에서 진흥왕(眞興王)의 통치 정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흥왕 비석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되어 지금은 모조품이 정상에 서 있다. 그러나 비봉 꼭대기에 서면 바위에 새겨졌던 결연한 문장들이 여전히 공기 속에 살아 숨 쉬는 듯하다.



"朕以道不修 則天降災 善不行 則民離"(짐이도불수 칙천강재 선불행 칙민리)"짐이 도를 닦지 않으면 하늘의 재앙이 내리고, 선을 행하지 않으면 백성이 떠난다."



절대 권력을 쥔 군주가 스스로를 경계하며 하늘과 민심 앞에 겸허하고자 했던 이 글귀는 언제 읽어도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는 직접 현장을 살피는 순수(巡狩)를 통해 백성의 삶을 위무하고자 했다. 진흥왕의 무거운 책임감을 되새기다 보면, 내가 짊어진 오늘의 고단함은 어느새 가벼워진다.



나에게 비봉은 단순한 산봉우리가 아니다. 역사 속 현자의 가르침을 통해 내 삶을 정화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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