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초하루에 치른 기꺼운 액땜

by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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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에 치른 기꺼운 액땜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하며 살아도, 일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벌어진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가장 안심하고 방심한 그 틈새를 타 액운은 고개를 든다. 정월 초하루인 오늘, 나는 하루의 시작에서 '액땜'의 전조를 마주하며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삶의 지혜를 되새겼다.



본래 액땜이란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뜻하는 '액(厄)'과 해진 곳을 메우는 '땜'이 합쳐진 말이다. 앞으로 닥칠 큰 불행을 가벼운 고생이나 작은 사고로 미리 때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조상들은 나쁜 운이 들어왔을 때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작은 희생을 통해 그 운을 미리 소모해 버리는 지혜를 발휘했다. 오늘 내가 겪은 일들이 바로 그러했다.



아침은 여느 때보다 정갈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넓은 주차 공간 덕에 마음 편히 차를 대고, 하차가 편하도록 운전석 문을 평소보다 활짝 열었다. 옆이 화단이라 내 시야에는 하차 장애물이 없었다. 그런데 문을 열 때 '틱'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각지대인 운전석 문짝 하단부에 화단 부속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문짝에 아무런 덴트(Dent)가 없었지만, 그것은 오늘 하루의 방심을 경고하는 가벼운 '액막이'였을지도 모른다.



거실에서 반려견 '앙꼬'와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명절 분위기 속에 밥상에 그와 동석하였다. 오늘 식탁이 떡국과 조리된 음식들이라 앙꼬에게도 그가 좋아하는 밥풀을 따로 준비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와 달리 고개를 돌리며 거부했다. 아마 사람들의 음식에 마음이 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앙꼬의 코에 밥풀이 묻었고, 나는 그것을 떼어주려 무심결에 손을 뻗었다. 그 '찰나의 방심'을 놓치지 않고 앙꼬는 나의 왼쪽 약지를 깊게 물고 말았다.



앙꼬는 평소 입 주변을 만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훈육도 해보았지만, 짐승의 본능 혹은 트라우마는 나의 통제 영역 밖의 일이었다. 이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렛뎀 이론(Let Them Theory)'의 한 장면이자, 나의 방심이 불러온 결과였다.



비록 손가락은 아릿하여 타자에 불편은 있지만, 나는 이 소동을 기꺼이 '액땜'이라 부르기로 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낙담하기보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이걸로 더 큰 화를 면했다"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마음의 평안을 찾는 조상들의 심리적 방어 기제를 빌려왔다.



정월 초하루에 치른 이 작은 해프닝은 올 한 해 닥칠지 모를 더 큰 재앙을 막아주는 고마운 신호다. 방심했던 나를 깨워준 앙꼬의 기습과 자동차 문의 마찰음은, 남은 일 년을 더욱 겸허하게 살아가게 할 'Blessing in disguise(숨겨진 축복)'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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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의 일상에는 액땜 없이 평안만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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