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길 위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아 한양도성길 숭례문 구간을 갑니다. 남산공원 백범광장의 잔디밭에서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산책의 문을 엽니다. 자주독립을 외쳤던 그의 굳건한 기상을 뒤로하고, 소월을 만나 그의 이름을 딴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고독한 역사 탐방의 길 위에서, 빌딩 숲 사이로 위엄 있게 솟아오른 숭례문의 뒷모습과 마주합니다.
1636년 12월 14일, 삭풍을 안고 홀로 이 길을 걸었던 최명길을 떠올립니다. 청나라 군대가 불광동 인근까지 내려와 인조의 강화도 피신 길은 막혔습니다.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시간을 벌기 위해 스스로 나섰던 담판의 길이었습니다. 인조가 붙여준 호위병 20명조차 숭례문을 벗어나자마자 도망쳐버렸습니다.
숭례문의 장엄함을 뒤로하고 세종대로를 건너 세종대로 7길의 골목 안으로 발을 들이면, 도심의 소음은 이내 잦아듭니다. 성벽의 자취는 사라지지만 사색의 끈은 오히려 단단해집니다. 대한상공회의소 앞 보도블록을 유심히 살피며 걷다 보면, 바닥에 박힌 동판과 낮은 돌담 흔적이 이곳이 과거 성곽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길을 따라 걷다 통일로 2길과 만나는 지점, 그곳이 바로 서소문이었던 소의문 터입니다. 그 자리에는 천주교 박해 시절 수많은 순교자가 마지막 숨을 고르며 지나갔던 아픈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다시 직진하여 서소문로를 만나 우측으로 꺾어 들면 근대 교육의 요람인 배재학당에 다다릅니다. 서소문로 11길을 따라 배재공원과 중부등기소를 지나는 이 길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드디어 이 코스의 백미인 정동 로터리와 정동길이 펼쳐집니다. 붉은 벽돌 건물들이 자아내는 고즈넉한 풍경 속에 40년 전 서소문동 38번지에서 출발한 젊은 수사관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1897년에 지어진 한국 최초의 서양식 개신교 교회인 정동제일교회와 아치형 창문이 아름다운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앞을 지납니다. 환경에 굴하지 않고 100년 넘는 세월을 견뎌온 건축물들에서 굳건한 의지를 느껴봅니다. 덕수궁의 별채인 중명전에 다다르니,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한 독특한 외관 너머로 을사늑약이라는 시린 역사의 풍랑이 전해옵니다.
여정은 정동공원의 언덕 위에서 새문안로를 향해 이어집니다. 고종이 피신했던 러시아 공사관의 하얀 탑을 뒤로하고 송월길로 접어듭니다. 왼편으로 강북삼성병원의 전경이 보일 때쯤,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오늘의 종착지인 돈의문 박물관 마을과 역사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옛 서울의 골목을 보존한 이곳은, 돈의문같이 사라진 것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보입니다.
노을이 정동길의 붉은 벽돌에 내려앉습니다. 백범의 기개와 소월의 서정, 최명길의 결단이 겹쳐지는 이 길 위에 한참을 서 있습니다. 성벽은 끊겼으나 역사는 이어지듯, 환경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나의 의지도 이 길 위에 연한 흔적으로 남았음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