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인과 점심을 하고 오후 2시경 사무실로 가는 길에 잠실 3단지 상가를 지나다 이색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할 때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내게는 ‘트리지움’이라는 세련된 이름보다 ‘잠실 3단지’가 친숙한 곳이다. 스타벅스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인터넷을 찾아보니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제라는 ‘스윗 아워(Sweet Hour)’ 이벤트 때문이란다.
그 긴 줄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교차했다. 사실 '적립'이나 '이벤트'에 조금만 소홀하면 금세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고,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젊은 시절엔 나도 작은 혜택 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뉴헤이븐의 향기, 그리고 이양하의 수필
길가에 퍼지는 진한 커피 향기를 맡으니, 이양하의 <낙엽을 태우면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낙엽 타는 냄새를 맡으며, 나는 내가 이
세상의 제외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제외된 인간이 아니라는 것'.. 이 말이 나를 미국 뉴헤이븐(New Haven) 시절로 데려다주었다. 그곳의 스타벅스는 내게 카페 그 이상이었다. 유학생에게 스타벅스 커피는 비싼 편이라 한 번 가면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곤 했다. 스타벅스는 나의 가장 아늑한 자습 공간이자, 튜터에게 에세이 첨삭 지도를 받던 치열한 학습의 장이었다. 때로는 세상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캠퍼스에서 누릴 수 없는 휴식을 주는 안식처이기도 했다.
하루 종일 그곳에 머물며 커피 향에 취해 책장을 넘기던 시간들... 그때도 나는 이양하 선생처럼 생각하곤 했다. 커피 향을 맡으며 내가 이 세상의 흐름에서, 혹은 이 치열한 학문의 길에서 '제외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메리카노를 넘어선 ‘유연함’이라는 득템
호텔의 해피아워와 비슷한 스타벅스의 스윗 아워에 동참하려 기다리는 청춘들의 모습이 참 싱그럽게 보였다. 문득 그 활기찬 에너지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만 역세권의 장사진을 피해, 사무실로 가는 삼성동의 조금 여유로운 매장을 찾아 들어갔다.
오늘 여기는 25명 한정이라는데 길리 줄지 않아 다행이었다. 습관 같았던 ‘아메리카노’ 대신, ‘콜드브루’*를 주문했다. 이것은 일종의 ‘스타벅스 리뉴얼’이자, 나만의 유연함을 시험해 보는 과정이었다. 리유저블 컵을 당근 마켓에 팔아 이득을 남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새로운 메뉴를 주문하며 세상의 변화에 발을 맞춰보는 즐거움이 컸다. 유연해지는 순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선물을 ‘득템’하게 된다.
정상의 행정사 사무소로 향하며
콜드브루 한 잔을 들고 사무실로 향하는 길, 기분이 상쾌하다. 이양하 선생이 연대 뒷산에서 낙엽을 태우며 존재의 가치를 확인했던 기분과 비슷하다. 나 또한 이벤트를 통해 소외되지 않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세월이 흘러도 새로운 것을 향해 손을 뻗는 유연함이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제외되지 않은 주체’로 남을 것이다.
오늘 여러분의 커피 향기에는 어떤 추억과 유연함이 담겨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