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실의 문턱에 서서
영화를 보기 전, 나의 마음은 이미 1457년의 영월에 가 있었다. 이홍위는 조선 최고의 정통성을 가진 적장자이자, 세종의 무릎 위에서 사랑받던 원손(元孫)이었다. 그 귀한 존재가 숙부에게 왕관을 뺏기고 청령포라는 '육지의 섬'에 갇혔다. 정순왕후와는 생이별을 하고, 세상과도 단절되었다. 역사는 그를 역적으로 기록했다. 그가 겪은 가혹한 환경을 복기하며 나는 극장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나의 청령포는 숨소리조차 내기 힘든 적막과 공포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그가 느꼈을 고립감이 스쳤다. 동대문 밖에서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어 80평생을 그리움 속에 버티다 죽어간 정순왕후의 삶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훗날 그의 10대 후손 숙종이 장릉과 사릉으로 그들의 이름을 복원해 주기까지 200여 년간 묻혀있었다. 그 진실의 무게를 생각하며, 나는 스크린을 마주했다.
2. 기대를 비껴간 '사람 냄새'의 충격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나의 기대를 완전히 비껴갔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에 <연려실기술> 등을 언급하기는 했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고증이라는 외투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한 편의 '판타지'였다. 영화는 역사적 기록이 전무한 단종의 유배 기간 4개월이 주 무대였다. 감독은 그 공백을 차가운 정치적 암투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대신, 장항준 특유의 낙천성이 깃든 '사람 냄새'로 채워 넣었다.
영화 속 청령포는 감옥이 아니었다. 그곳은 왕을 '멀리 있는 통치자'가 아닌 '상처 입은 이웃'으로 받아들인 백성들의 온기가 머무는 곳이었다. 유배지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어떻게 꽃피울 수 있는지를 감독은 신선한 시각으로 그려냈다. 역사적 사실을 중시하는 나에게는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낯선 풍경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단종이 느꼈을 고립감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시각적으로 형상화되는 순간, 나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3. 다슬기 국 한 그릇에 담긴 숭고한 소통
압권은 수라상 장면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산과 들에서 구한 최고의 음식과 자연물을 올리는 장면이었다. 며칠째 식음을 전폐한 그에게 그것을 설명하는 엄흥도의 표정에서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엄흥도: 이것은 아침 강에서 제가 직접 잡은 다슬기로 끓인 국이옵니다.
단종: 그래... 이것을 네가 직접 잡았단 말이냐. 국은 누가 끓였나?
엄흥도: 이것은 제가 서강에서 직접 잡은...
단종: 그래서 국은 누가 끊였느냐?
엄흥도: ... ... 막동 어멈이...
단종: 국이 잘 맛있구나. 저기 저 나물과 산딸기는 또 누가 가져온 것이냐.
엄흥도: 여기 이 나물은 뒷집 할멈이... 산딸기는 아랫마을 아이들이 어르신께 드린다고... 이 산삼은... 백성들이 어르신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
대사를 제대로 다 복기하진 못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나 역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진심에 단종이 드디어 수저를 들었을 때, 왕과 백성 사이의 벽이 허물어졌다. 상처 입은 영혼과 그를 보듬는 평범한 이웃들의 의지가 만나는 거룩한 소통의 순간이었다.
단종이 마을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엄흥도가 그 곁을 지키는 모습은 비록 역사적 고증을 외면한 극단적 픽션이다. 그 순간만큼은 청령포의 시린 강물이 멈춘 듯한 감동을 주었다.
4. 팩트와 픽션을 넘어선 위로
조선 왕실의 비극을 다룬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처럼 대담하게 사실을 뒤틀어 '있었으면 좋았을 법한 위로'를 일깨운 작품은 없었다. 장항준 감독에게 이 영화는 역사적 사료가 아니었다. 고통스러운 역사의 한 장면에 "사람이 곁에 있다면 아무리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견딜 수 있다"는 처방전을 건넨 드라마틱한 선물이었다. 여기에 이것이 역사니 픽션이니 하고 따질 이유는 더 이상 없었다.
비록 실제 청령포는 적막했고 단종은 끝내 홀로 죽음을 맞이했으나, 영화 속에서라도 따뜻한 밥을 먹고 아이들과 웃던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엄흥도가 목숨을 걸고 시신을 거두었던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에 기반한 것이었음을. 엄흥도의 그 결단은 이제 단순한 의지가 아닌 '깊은 연민'으로 다가왔다.
5.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환경은 단종의 의지를 꺾으려 했고, 역사는 그를 외롭게 두었으나, 감독의 판타지는 그 시린 의지를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장릉과 사릉, 멀리 떨어져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무덤 사이로 영화가 놓아준 따뜻한 다리 하나를 본 것만 같았다. 무거운 따뜻함이었다.
나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검은 화면 위로 이름들이 흐르는 동안, 나는 내가 살아온 생의 크레딧을 떠올렸다. 나의 인생 또한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현실을 이겨낼 따뜻한 다슬기 국 한 그릇 같은 성실함이었기를 바래본다. 내 삶의 모든 책임이 멈추는 그곳(The Buck Stops Here)에 결국 사람이 남기를 간절히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