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호국의 바다를 품은 관음 성지, 보문사에서

by 박성기


[제5회] 호국의 바다를 품은 관음 성지, 보문사에서 마주한 최서단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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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봉(한터산)에서 마주했던 조강의 장엄한 합수(合水)를 가슴에 품고, 발길은 이제 강화의 서쪽으로 향한다. 석모대교를 건너 섬의 속살을 가로지르며 닿은 곳은 석모도다. 예전 같으면 배를 타고 건너야 했을 이 길이 이제는 다리로 이어져 있으나, 바다가 내뿜는 서늘하고 웅장한 기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 섬의 품 안에서 천 년의 세월 동안 서해를 굽어보고 있는 보문사(普門寺)의 일주문 앞에 선다.



나에게 보문사는 각별하다 못해 눈물겨운 곳이다. 이곳은 내가 서슬 퍼런 청춘의 날들, 군복을 입고 삶의 기초를 닦았던 군 생활의 터전이다. 서검도와 말도가 가물거리는 이 거친 바다 앞에서 나는 밤을 지새웠다. 그때 마셨던 소금기 섞인 바람은 훗날 내 삶의 시련을 견디게 한 자양분이 되었다. 올해 초, 사랑하는 아들과 동생의 손을 잡고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나는 그 옛날 청춘의 나를 만났다.



그리고 이제, 인생의 고락을 함께해 온 '대포삼총사'와 우리 사무실의 든든한 동료와 연합하여 이 길을 함께 걷는다. 개인의 추억이 가족의 사랑으로, 다시 동료들과의 굳건한 연대로 확장되는 이 과정이야말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보문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 성지로 꼽힌다. 나에게 이곳은 '호국(護國)의 관음'이 머무는 의지의 요새로 다가온다. 눈앞에 펼쳐진 서해 바다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수평선 너머에는 서검도, 주문도, 볼음도, 그리고 우리 영토의 최서단 말뚝이 박힌 말도(唜島)가 점을 찍듯 외롭게 서 있다. 그 섬들은 보문사의 부처처럼 서해를 지키며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군 시절, 저 섬들을 바라보며 다졌던 '지키겠다는 의지'는 세월이 흘러 내 삶과 일터를 지키는 단단한 철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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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419계단을 올라 마애석불좌상이 계신 눈썹바위 아래에 선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는 조강과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조강이 화해와 합수의 장이었다면, 보문사 앞바다는 외세의 포화와 분단의 긴장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긴장의 최전선이다. 하지만 보문사는 그 풍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켜왔다. 선조들은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이곳에 올라 부처의 가피를 빌며 나라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들에게 불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가혹한 환경을 이겨내려는 '호국의 의지' 그 자체였다.



말도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저 작은 섬이 우리 국토의 최서단을 지키고 있기에 오늘 우리가 이 평화를 누리는 것 아닌가. 환경적으로는 고립된 절해고도일지 모르나, 그곳을 지키는 해병의 눈빛 속에는 똑 같은 국토의 모습이다. 우리 사무실 식구와 대포삼총사가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도 같다. 각자의 위치에서 거친 세상을 버텨내고, 서로의 어깨를 보듬으며 '함께' 나아가겠다는 그 의지를 다지기 위함이다.



정조가 주합루의 계단을 오르며 아버지를 향한 슬픔을 나라를 세우는 의지로 승화시켰듯, 보문사 계단을 오르며 고단함을 인생의 결실로 승화시킨다. 연잉군이 남촌에서 백성의 진심을 읽었듯, 나는 이 성지에 모인 동료들의 눈빛에서 '함께하는 의지'의 힘을 읽는다. 혼자라면 꺾였을 환경도, 셋이 모이고 온 사무실이 연합하면 능히 타고 넘을 '의지의 물때'가 된다.



나는 이제 보문사의 범종 소리를 들으며 하산한다. 군 시절의 나, 아들과 함께한 나, 그리고 동료들과 웃고 있는 지금의 내가 이 마당에서 하나로 만난다. 비극과 저항의 섬 강화에서, 보문사는 나에게 가르쳐준다. 호국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의 사람들을 지키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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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검도 너머로 햇살이 바다를 윤슬로 만들어 갈 때, 대포삼총사와 다음의 장소로 이동하였다. 우리의 마음은 그 섬에 두고, 우리의 의지는 용인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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