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진적으로 진화하는 나의 민주주의

by 박성기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나의 민주주의


어느 사단법인 DMZ 회장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선거를 마무리하고 텅 빈 투표함을 바라보니, 지난 한 달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2025년 8월 9일, 이사회에서는 필자를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의결하였다.


필자가 사단법인의 허가업무를 담당하고 관리하는 행정사, 사단법인의 허가 이후 등기를 하는 법무사인 점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회장도 '오늘부로 나는 회장직을 사입하니, 후임회장 선거를 위한 공정선거의 선례를 만들어 달라'라고 당부하였다.


사실 필자는 지금 그런 자리를 맡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법인의 사실상의 이사로서, 법적인 업무를 직업으로 해 온 사람으로서 선공후사의 사명감으로 그 직을 수용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 후 후보자 등록, 정관 해석, 그리고 투표와 개표 과정까지를 총괄하였다. 정관을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니 모든 것이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웠다. 하지만 보고서나 회의록의 딱딱한 문장들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나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훈장처럼 마음속에 새겨졌다.


예전부터 나는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웠고, 미국에서 한국식 민주주의의 오류를 발견하였다. 나는 한때 미국대통령선거 후보 가족의 경호원으로서 미국 대통령선거를 직접 경험했고, 미국대통령선거의 참관인으로서 미국민주주의의 완성도를 확인하였다. 흔히 사단법인에서는 '사원 주권', '권력 분립' 같은 단어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저 머리로만 외우는 이론에 불과하다고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인식해 왔다.


그런데 보통사람들은 선거는 그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한 표를 던지는 형식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공동체의 중요한 일들은 누군가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거라 막연하게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복잡한 문제나 의견 충돌이 생기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하는, 그런 소극적인 태도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 과정을 직접 겪으며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실천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로써 나의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달 이사회에서 선관위를 구성하고, 선거관리규정도 제정하였다. 거기에는 회장선출을 위한 대의원 총회 개최 일시, 장소, 회장 입후보자 자격, 입후보시 제출서류, 입후보시 대의원 3명 이상 추천을 골자로 하는 내용 등이 들어있었다. 또한 세부적인 것은 선거관리위원회 의결로서 한다는 위임조항을 규정하였다.


선관위는 즉각 정관, 선거관리 규정에 따라 공정한 선거를 위한 선거업무에 착수하였다. 우선 임원의 종류 및 정수, 후보자등록기간 및 장소, 선거일 및 투표장소에 대한 선거공고를 하였다. 선거인 및 피선거권에 관한 사항 및 투표방법에 대한 내용의 선거공고를 하였다. 선관위는 후보자가 제출한 서류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주민등록초본을 대신하여 신분증 사본을 제출한 한 것을 확인하였다. 선관위는 즉시 회의를 열어 후보자가 초본대신 신분증을 제출한 것에 납득할만하고, 제출서류상 내용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회장후보로 등록한 사람이 1명이었다. 그러니 선거는 하나마나이고 형식적인 통과의례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원래 이사회가 선거장소로 정한 곳은 고급식당으로 선거비용을 줄이자는 흐름이 있었다. 그래서 집행부에서는 선거관리위원장이 선거장소를 최초 공고한 곳이 아닌 제3의 장소로 하자는 안이 제기되었다. 사정변경에 따라 주장할만한 사안이었으나 공정한 선거를 진행해 온 선관위가 수용하기는 어려웠다. 선관위 내부에서 조차 이견이 있었다. 이들은 선거의 공정성보다는 사원의 화합에 방점을 두는 듯했다.


나는 위원장으로서 위원들과 수차례 논의를 하였다. 원칙을 고수하고, 공정하게 선거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당장의 불편함은 따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새로운 회장에게는 떳떳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게 오히려 사원(회원)들에게는 더욱 화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결국은 정관의 규정대로, 이사회 결의내용 그대로 선거장소를 확정하였다. 사원들에게 선거장소와 관련한 혼선이 정리되었으며, 선거장소는 이사회가 의결하여 공고한 대로 진행한다고 공지하였다.


선관위는 대의원 명부, 투표용지, 투표함, 기표도구 등을 준비하였다. 투표당일의 순서를 정하였다. 후보자 소견발표, 정관 등에 따른 투표안내, 참관인 선정, 투표용지배부, 투표시작 및 종료선언, 개표인 및 검표인선정, 선거결과발표, 당선자공고 등에 대한 것이었다. 선거당일 우리는 준비한 내용대로 선거를 진행하여 당선자를 공고하였다.


선관위가 집행한 사항 하나하나가 얼마나 공정한 결과를 위해 중요한지 경험하였다. 정관 규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논의와 신중함이 필요한지도 경험하였다. 법인 대의원들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원 주권'의 실체가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우리와 같은 사단법인에서는 흔치 않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실현되는 현장이었다. 작은 갈등과 저항의 상황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은 두렵기보다 오히려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사회나 후보들과는 독립적으로 오직 공정한 선거만을 위해 존재했다. 이 역할을 수행하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권력의 남용을 막는 핵심 장치라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누군가에게 지시받는 것이 아니라, 선관위원장으로서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으로 모든 절차를 이끌어가는 과정은 내게 깊은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심어주었다.


이번 경험은 내게 민주주의가 머리로 이해하는 개념이 아니라, 발로 뛰고 부딪히며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르쳐주었다. 이제 나는 복잡한 갈등을 피하기보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결해 나갈 보다 강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예전의 어느 체육단체의 선거관리위원장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는 나의 성장기록부에 한 줄의 스펙이 될 것이다. 우리 DMZ 법인이 발전할 소중한 선례도 될 것이다. 이는 나 자신이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소중한 기록이라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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