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 길, 인문해설사 박성기

by 박성기
KakaoTalk_20250913_004547835.jpg?type=w1 철원 두루미 평화공원


프롤로그


‘DMZ 철원 구간’의 인문학적 이야기를 들려드릴 해병대 DMZ 출신 박성기 해설사입니다. 작년 9월 강화 제적봉에서 시작한 우리는 오늘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역에서 출발합니다.


오늘의 코스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비극의 땅, 백마고지에서 시작하여 평화의 물길에 이르는 여정입니다. 굴곡 많은 우리의 인생길과 비슷합니다


백마고지와 전쟁의 상흔은 우리 인생의 초년과 청년기에 성장하기 위하여 겪어야 했던 수많은 시련과 아픔의 시간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싸움과 이념의 갈등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상흔을 겪으며 얻게 된 깨달음과 경험은 지혜가 됩니다. 무너진 노동당사가 침묵으로 역사를 증언하듯, 삶의 상처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말해줍니다.


도피안사에서 번뇌를 내려놓고, 학저수지의 맑은 물처럼 삶의 모든 흔적을 품어내는 때가 되면, 그때는 풍파 후에 찾아오는 노년의 평화로운 시기일 것입니다.



코스개요


철원 평화의 길 15코스는 70여 년 전, 이 땅을 휩쓸었던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고, 그 위에 다시 돋아난 생명과 평화의 기운을 느끼는 특별한 순례지입니다. 발걸음마다 ‘과거의 비극’과 ‘현재의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이곳, 철원 평화의 길을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백마고지, 소이산, 노동당사, 도피안사, 두루미평화공원 순입니다.


백마고지

우리가 갈 첫 번째 장소는 백마고지입니다. 청룡(靑龍), 맹호(猛虎), 백마(白馬) 부대는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친 국군의 대표적인 부대들입니다. 그중에 오늘은 백마부대 (육군 제9보병사단)을 소개합니다.


6.25 전쟁 이전에는 북한의 행정 구역이었으나, 전쟁을 통해 한국이 회복하여 현재 대한민국 영토가 된 지역입니다. 그래서 ‘수복지역’이라고 합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하고 상징적인 전투 중 하나로, 한반도 정전협정을 앞두고 벌어진 마지막 고지 쟁탈전입니다.


이 전투는 강원도 철원의 이름 없는 작은 언덕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졌습니다. 이 언덕은 철원평야와 주요 보급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1952년 10월 6일에서 10월 15일까지, 국군 제9사단과 중국인민지원군 제38군의 결투였습니다. 중국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국군이 끈질긴 방어와 역습을 펼쳤습니다. 양측은 이 작은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10일 동안 무려 12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벌였습니다.


이름 없던 이 언덕은 치열한 전투를 겪으며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양측에서 쏟아부은 30만 발 이상의 포탄과 폭격으로 인해 언덕의 모든 나무와 풀이 사라졌습니다. 흙먼지만 남은 산의 모습이 마치 쓰러져 누운 백마처럼 보여 백마라고 한 것입니다. 이 이름은 당시의 참혹했던 전투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언과 같습니다.


소이산과 철원평야

소이산은 소리를 내는 산이라는 뜻으로 한국 전쟁 당시 남과 북이 서로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교전했던 곳입니다. 끊임없는 총성과 포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소이산은 우리에게 과거의 상흔과 현재의 평화가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장소입니다.


바로 눈앞에 철원평야의 모습도 보입니다. 한때 최고의 곡창지대였지만, 지금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이 만든 분단선이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새들의 안식처로 만들었습니다. 매년 겨울이면 수많은 두루미와 재두루미, 기러기들이 찾아와 장관을 이룹니다.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땅이 이제는 새들의 낙원이 된 것입니다.


노동당사

지붕도, 창문도, 내부도 없는 앙상한 콘크리트 골조만 남은 건물이 있습니다. 북한 노동당사입니다. 이 건물은 그 자체로 거대한 비석과 같습니다. 1946년,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인 이 건물은 이 땅을 지배했던 권력과 이념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사는 말이 없으나 무너진 벽은 이념의 허망함과 전쟁의 잔혹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곳곳에 박혀 있는 총탄 자국과 포탄 구멍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비명과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침묵이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노동당 사는 우리에게 이념의 폭력이 남긴 상처를 잊지 말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엄숙한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도피안사

도피안사(到彼岸寺)는 고통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피안)로 이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라 시대에 창건된 천년 고찰로 한국전쟁 당시 불탔지만,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에 국보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이 있습니다. 불상은 혼란과 아픔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중생의 고통을 함께하고 있는 듯한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전쟁의 아픔이 가득했던 도피안사는 고통을 넘어선 깨달음과 평화의 세계를 염원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잠시 머물며 고즈넉한 경내를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무거웠던 마음이 위로받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학저수지와 두루미 평화공원

이제 우리의 여정은 종착역을 향합니다. 맑은 물이 고요하게 흐르는 학저수지를 따라가면 양지리공원이 나옵니다. 이 아름다운 물길은 붉은 피로 물들었던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젖줄과 같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갈등과 무관하게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며, 이 땅을 다시 푸르고 풍요롭게 가꾸어냈습니다.


우리는 두루미 평화공원으로 갑니다. 여기는 우리가 목적지이자,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모이는 공간입니다. 두루미는 평화, 장수, 그리고 행복을 상징하는 길조입니다. 분단의 상징인 DMZ 위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두루미들은 말합니다.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선은 부질없다"고 합니다.



에필로그


이 길은 우리에게 과거를 잊지 않되, 그 아픔에 머무르지 않고 희망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전쟁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듯, 인생의 굴곡 또한 완전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흔적 위로 평화와 생명이 다시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바로 이 땅의 평화를 위한 걸음이자 소망이 될 것입니다.


DMZ 평화의 길은 아팠던 역사를 아름다운 평화의 이야기로 바꾸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지난날의 고통을 평온함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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