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악보, 우이령 석굴암 계곡의 신비

by 박성기








자연의 악보, 우이령 석굴암 계곡의 신비



북한산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우이령(소귀고개)은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닫혀있던 '금단의 땅'이었습니다. 1968년 이후 41년이라는 긴 봉인의 세월은, 이 길을 도심 한복판에서 순수한 원형을 간직한 생태계 지역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탐방 인원을 제한하는 예약제를 통해서만 그 속살을 허락하기에, 우이령은 여전히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그 신비를 드러냅니다.



오늘 걸어온 교현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되는 길은 설악의 험준한 돌산과는 결이 다른 부드러운 흙길입니다. 이 완만한 길을 따라 걷다 마주한 오봉전망대에서 오봉을 바라봅니다. 다섯 개의 거대한 암봉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선 오봉의 위용이 경이롭습니다. 설악의 공룡능선이 뿜어내는 날카로운 기개를 북한산만의 정교한 조각미로 푸른 하늘을 당당히 받치고 서 있었습니다.









오늘의 백미는 석굴암 계곡이 들려주는 '자연의 악보'에 있습니다. 계곡은 급하게 쏟아지는 법 없이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나지막이 흐릅니다. 맑은 물이 아주 작은 소(沼)에 머물다 이내 높고 낮은 폭포가 되어 다음 소로 넘어갑니다. 그 정갈한 이음새는, 마치 악보 위의 음표들이 마디를 건너가는 섬세한 이행과 같습니다. 걷는 내내 배경음악처럼 들려오는 물소리는 때로는 음악의 포즈처럼 끊어집니다. 너무나 세밀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숨을 죽여 귀를 기울여야만 비로소 그 본연의 음색을 드러냅니다.



돌부리 끝을 스치며 부서지는 투명한 고음은 바이올린의 날렵한 선율로, 깊은 소에 담겨 묵직하게 공명하는 잔향은 비올라의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깎아지른 절벽 끝에서 바람의 포효를 견뎌야 하는 설악 봉정암의 소리가 웅장한 첼로의 저음이라면, 우이령의 물소리는 소와 소를 잇는 매끄러운 보잉(Bowing)이 만들어낸 완벽한 현악 이중주입니다. 이 선율을 따라 거대한 바위 요새 같은 석굴암의 품에 안기면, 비로소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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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량한 물줄기야말로 우이령이 '천연기념물의 보고'가 된 생명의 젖줄입니다. 과거 군사 작전 도로로 사용되며 상처 입었던 식생은, 40여 년의 통제 기간 동안 소나무와 잣나무, 낙엽송 같은 침엽수들이 울창한 터널을 이루며 치유되었습니다. 습도가 일정한 계곡 주변으로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았고, 발치에는 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조릿대(산대나무) 군락이 깔려 상록의 정취를 더합니다.



인간이 심고 자연이 길러낸 이 짙푸른 숲 사이로 하늘다람쥐와 원앙이 안심하고 깃든다는 풍경은, 북한산의 거친 화강암 속에서 만나는 경이로운 신비입니다. 험준한 설악의 길들이 정복해야 할 대상이라면, 우이령의 석굴암은 맨발로 흙을 느끼며 자연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곳입니다. 40년 만에 처음 마주한 이 비경은, 단순히 걷는 길을 넘어 우리가 잃어버렸던 자연의 정직한 복원력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세 사람이 북한산의 품에서 8km를 완보하였습니다. "비 갠 긴 둑에 풀빛이 짙어지듯(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그 푸르름이 사무칠 때 다시 오기를 약속하며 3시간의 여정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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