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없는 조강(祖江),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바로
휴전선 없는 조강(祖江),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바로 그곳(가제)
[프롤로그] 경계 없는 물길, 조강(祖江)에서 띄우는 편지
생의 가장 뜨거웠던 사십여 성상을 국가의 공복이자 법의 수호자로 살아온 나에게, 사람들은 종종 ‘성공의 비결’을 묻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겉으로 드러난 번듯한 이력서를 내미는 대신, 내 청소년기의 뜰을 할퀴고 지나간 서슬 퍼런 ‘결핍’의 기억을 먼저 꺼내 놓는다. 사실 나는, 빛나는 훈장보다 깊은 흉터를 먼저 가진 ‘상처 입은 소년 가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핍을 탓하지 않았다. 결핍은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 극복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이 결코 인간의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몸소 증명하고 싶었기에, 나는 주어진 결핍을 나를 밀어 올리는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삼았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찬란한 승전보가 아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환경이라는 벽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나만의 보급로를 뚫어온 한 남자의 처절한 ‘생존 기록’이자 ‘성장 보고서’다. 내가 걸어온 길이 결코 화려하거나 그리 내세울 것 없는 보잘것없는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척박한 땅에서 작게나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온 기록만큼은 분명히 있다.
나의 삶은 매 순간 거친 파도를 뚫고 미지의 땅에 발을 내딛는 상륙 작전의 연속이었다. 지리산 자락에서 마주한 청소년기의 고단한 현실은 나를 단단한 해병의 야성으로 무장시켰고, 수사 현장의 팽팽한 긴장감과 타국에서의 지적 투쟁은 나를 공평과 지성의 길로 안내했다.
이제 예순여섯, 남들은 안주와 은퇴를 말할 때 나는 도리어 지난 65년의 습관을 송두리째 도려내고 펜을 들었다. '어른 글쓰기 모임'(코치 정원희 작가)이라는 낯선 시스템에 나를 던진 것은, 내 생애 가장 무모하면서도 찬란한 ‘지적 상륙 작전’이었다. 65년의 낡음을 벗겨내자 그 안에는 여전히 뜨거운 야성의 ‘해병부사관 박성기’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준비란 없다. 일단 해안에 발을 내딛고, 전진하며 수정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상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걸어온 나의 길을 되돌아보며 깊은 평온과 감사를 느낀다. 내가 이토록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남들보다 앞서갔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풍랑 속에서도 굽히지 않았던 ‘공평과 정의, 공익’이라는 가치를 지키려 애썼기 때문이다. 그 기개는 1987년 6.29 선언의 실질적인 도화선이 되었고, IMF 국가 위기 앞에 ‘금 모으기 운동’을 제창하며 우리 민족의 저력을 일깨우는 마중물이 되었다. 또한, 미국이라는 거대 강국 앞에서도 당당히 국민주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름 없는 길이었을지언정 나라와 정의를 위해 헌신하고자 했던 그 진심만큼은 꺾이지 않았기에, 나는 내 지난 궤적에 작지만 단단한 긍지를 품는다.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깊은 내공을 지닌 분들이 조용히 삶을 일궈가고 있음을 잘 안다. 그분들의 겸손함에 비하면, 나의 이 기록은 어쩌면 부끄러운 호들갑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펜을 든 이유는 명확하다. 이름 없는 필부(匹夫)이자 한 명의 의병(義병)으로서 살아온 나의 투박한 발자국이, 누군가에게는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한 용기가 되고 길 잃은 방황 끝에 만나는 선명한 지도가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미 <청소년 인생 설명서>라는 전자책을 통해 세상에 내놓았던 나의 진심은, 이제 방황하는 청춘들의 곁을 지키는 ‘청소년 멘토’로서의 소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남은 숙제와도 같은 ‘통일의 길 22년’을 향해 나아가며, 나는 매일을 일 년 중 최선의 날이자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 할 것이다. 이는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나의 오랜 좌우명을 실천하는 작은 걸음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세종대왕이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 같은 영웅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삶의 전장에서만큼은 기꺼이 ‘의병’이 될 수 있다. 나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조국의 운명과 내 삶의 위기 앞에 이름 없는 의병의 마음으로 살아온 그 인생의 속살을 털어놓고자 한다.
‘조강(祖江)’은 내가 해병으로서 청춘을 바쳤던 강화와 김포 사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하나가 되는 물길을 뜻한다. 우리 민족의 뿌리와도 같은 이 강에는 놀랍게도 ‘휴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시니어 머린즈(Senior Marines)'의 일원이 되어 이 물길을 바라보며, 총을 들고 경계하던 살 떨리는 긴장을 넘어 이제는 단절된 세대와 이념을 하나로 잇는 ‘이음’의 작가가 되겠노라 다짐한다. 경계 없는 조강의 물결 속에 내가 평생 추구해온 공평의 가치와 평화로운 통일의 소망이 일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수(志壽)의 나이에 내가 굳이 과거의 아픈 상처까지 들춰내며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다. ‘수저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칸막이 뒤에서 좌절하는 내 아이들 또래의 이 시대 청년들에게, 환경은 결코 당신의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몸소 증명하고 싶어서다.
젊은이들이여, 청춘의 시절은 결코 늦지 않았다. 지금 당신의 습관을 바꿔라. 그러면 인생의 항로가 달라진다. 살아보니 청춘의 버릇은 평생을 가더라. 조강에 경계가 없듯, 당신의 가능성 앞에도 한계란 없다.
이제 나의 이 기록이 당신의 가슴속에 잠든 야성을 깨우는 뜨거운 불씨가 되길 바란다. 당신의 위대한 항해는 바로 지금, 이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시작될 것이다.
2026년 여름
남(南) 한터산에서 조강(祖江) 너머
북(北) 한터산과 개성을 바라보며
작가 박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