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버리고 싶은 습관: 원칙을 가로막는 '어정쩡함'
<올해 버리고 싶은 습관: 원칙을 가로막는 '어정쩡함'>
관행과 익숙함 뒤에 숨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원칙을 갉아먹던 습관과 완전히 결별하고자 한다.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바로 '원칙을 흐리는 어정쩡함'이었다. 단체에 소속되어 봉사활동을 하면서 '유연성'이나 '인간적인 배려'라는 미명 하에 지켜야 할 '원칙과 공정성'을 희생한 것을 반성한다.
관계의 편안함 뒤에 숨은 원칙의 타협을 거부한다
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접인춘풍(接人春風)의 자세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이런 태도는 사적인 관계에서는 중요하다. 이 온화함이 조직의 신뢰를 해치는 편의 요청 앞에서 '눈감아주는 타협'으로 변질될 때가 있었다. 불편한 관계를 피하기 위해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진정한 배려가 아니다.
따뜻함은 유지하되, 원칙에는 엄격해진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모두에게 공평함을 제공하는 데 있다. 지금부터 나는 단체의 일에는 원칙을 중시하여 가을 서리(秋霜)처럼 단호할 것이며, 사사로운 관계가 공적 기준을 흔들도록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소신과 논리를 흩트리는 '중간 지점 찾기'를 멈춘다
나는 공적인 일을 할 때 늘 논리와 공익에 기반한 소신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법무사가 되어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의 원칙이 무디어져 갔다. 다수의 반대에 직면했을 때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어정쩡한 중간 지점'을 찾아 헤맨 경험이 있다.
이는 결국 논리적 옳음을 알면서도 '혼자 튀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타협이었으며, 나의 당당함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위였다.
원칙과 논리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원칙이 명확하다면, 나는 임기추상(臨己秋霜)의 자세로 스스로에게 엄격해져 소신을 관철할 것이다. 원칙을 지킨 성공적인 경험이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듯, 나는 흔들림 없이 그 소중한 가치를 수호할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안이함의 대가
지난여름에 어느 사단법인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의 경험은 '어정쩡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생업을 버리고 봉사하는데... 유연성이 위원장님의 원칙보다 중요하다'는 다수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사실 그때는 그래야만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나의 원칙 만을 고수하여 공고된 선거를 철회할 수도 없었다. 대의원총회장에서 발견된 하자 때문에 선거파행을 결정할 수도 없었다. 나는 대승적으로 현장에서 하자를 치유하여 선거를 마쳤다. 나는 박수를 받았고, 나의 민주주의가 성장하였다고 자평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나를 압박하고 있다. 그때 낡은 관행과 타협한, 그 한 번의 어정쩡함은 새로운 집행부에게 무원칙의 세계로 돌아가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었다. 그 단체는 '선출권력'임을 내세워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원칙의 타잣줄(Batter's Box Lines)을 놓치는 순간, 조직은 혼란에 빠진다. 민주주의의 성장은 타협이 아닌, 일관성 있는 원칙의 수호에서 비롯된다. 나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을 것이다.
원칙 수호와 결단, 최명길에게 배우다
나는 병자호란 주화파의 거두 최명길의 '삼전도 결단'을 존중한다. 그렇다고 해서, 성급한 인조반정 가담까지 찬성할 수는 없다. 나는 인간적인 관계에서의 '접인춘풍'은 그대로 유지한다. 공적인 영역에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안이한 관행을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오직 단단하게 세운 '임기추상'의 원칙만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어정쩡함'이라는 습관을 완전히 버리고, 더욱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리더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