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최명길] 389년 전, 불광동의 고독한 결단

by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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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최명길] 389년 전, 불광동의 고독한 결단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389년 전, 1636년 12월 14일. 얼어붙은 조선의 겨울은 유난히 차갑고 잔인했다. 얼음 덮인 압록강을 건넌 청나라 기마병 선봉대가 한양으로 돌진한다는 파발마의 전갈은 창경궁을 절망의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당초 계획은 마포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화도로 피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창경궁의 인조 일행이 숭례문 부근에 이르렀을 때, 믿을 수 없는 속도로 500km를 쇄도한 청군 선봉장 양철평(楊哲平)의 기마대는 이미 한양 서북쪽 녹번동을 지나 무악재로 진격하고 있었다. 강화도 피신은 완전히 차단된 것이다. 조선은 완전 무방비 상태에서 청군이 무혈로 궁궐을 점령할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인조를 에워싼 신하들이 속수무책으로 있을 때,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전하, 강화도 길이 막혔으므로 속히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소서.


소신이 나서 청나라의 진격을 늦추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바로 약골로 소문난 이조판서 최명길(崔鳴吉)이었다. 그의 결단에 감격한 인조는 자신의 호위병 20여 명을 그에게 내어주었다. 모두가 '나라의 지조를 위해 죽음도 불사해야 한다'는 명분과 도피를 외칠 때, 최명길은 호위병들을 이끌고 그 길을 거슬러 말을 돌렸다. 그러나 숭례문을 나서자 최명길은 혈혈단신임을 알았다. 그들은 전쟁을 두려워했다. 주화파 최명길과 엮이는 것을 회피하고자 호위병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자기 살길을 찾겠다고 도주해 버렸다.



그의 손에는 당시 조선 사대부들이 목숨을 걸고 부정했던, '치욕 그 자체'의 문서가 들려 있었다. 바로 '화의(和議)'를 청하는 장계였다.



“나라가 위급하니 조정에서 잠시 피난할 곳을 정해야 합니다.


지금 청군이 남하하는 속도를 보아하니,


명분(지조)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명분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화의를 청해야 합니다.”



그는 피신 행렬에서 벗어나 북쪽, 청군 선봉대가 진을 치고 있는 불광동(佛光洞) 쪽으로 향했다. 청군 진영 앞에 홀로 선 최명길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는 조선의 재상으로서, 선비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명예와 자존심을 그 자리에서 비워냈다. 그는 청군의 칼날 앞에 무릎 꿇고, 살아남기 위한 협상을 요구했다.



그가 청군에게 화의를 청하는 그 순간,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조선의 조정과 백성들은 그를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 규정하고 저주했다. 최명길은 이 비난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알았다. 이 치욕적인 화의를 통해 백성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면, 선비로서의 모든 명예를 비우는 것이 자신이 짊어져야 할 단 하나의 가치라는 것을.



이 고독한 결단이야말로 최명길이 389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던지는 '최악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법'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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