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나의 큰 수확: 무원칙의 시대에 새긴 정의
2025년 나의 큰 수확: 무원칙의 시대에 새긴 정의
사람들은 대개 '수확'이라고 하면 부나 명예 등 가시적이거나 평가 가능한 것들을 떠올리곤 한다. 물론 그런 것도 있다. 나는 정신적인 면의 가치, 수확을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2025년은 그보다 훨씬 단단한, '진실의 가치'를 수확한 한 해였다. 올해 내가 거둔 가장 결실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거센 풍랑 속에서도 정의의 편에, 그리고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나 자신의 원칙을 지켜낸 것 그 자체에 있다.
30년의 침묵을 깨고 되찾은 존엄
올해 초, 나는 30년 세월 동안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한 채 학대받아온 한 여성의 삶에 개입했다. 남의 가정사에 끼어드는 일은 조심스러웠지만,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 전의 중단"이라는 확신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존엄을 지키며 이혼에 이르게 도운 일은 단순한 법률적 조력을 넘어 한 인간의 남은 생을 어둠에서 건져 올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력 있는 수확이었다.
편견을 넘어선 공정의 실현
정의는 결코 한쪽 편에만 고여 있지 않음을 올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임차인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부당함에 맞서, 오히려 약자가 되어버린 주택임대인의 권리를 찾기 위한 경험은 나에게 '실질적 공정'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사회적 통념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사실과 진실만을 쫓았던 그 시간들이 모여 나의 정의는 더욱 정교해졌다.
거대 권력과 부조리에 맞선 투쟁
국가권력의 폭거에 내가 피해자로 마주 서 있게 될 때 느끼는 고독감은 만만치 않다. 차라리 평온한 다수에 서고 싶은 몰원칙의 유혹에 이끌리기도 한다.
내가 속한 사단법인 내부의 은밀한 조작에 맞서는 일은 유독 고단했다. 사원총회의 위임 결의가 위임장 조작으로 인한 정족수 미달인 것을 발견했다. 이때 내가 타협할 대상은 오직 정의뿐이었다. 거대한 기득권층의 규정을 무시한 운영이 성역으로 인정되는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원천적 위법 부당함의 존재를 입증해 나가는 과정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았다. 그렇지만 예서 말수는 없었다. 법치주의 고지가 바로 저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몽골의 거친 여행길에서도, 단체의 봉사 현장에서도 무원칙한 일 앞에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힘에 밀려 정의가 무시당하고 외면받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도 나는 굴복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더디지만 길을 잃지 않는 정의
2025년의 끝자락에서 내가 손에 쥔 수확물은 화려한 트로피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준 손수건이고, 조작된 서류 뭉치 속에서 찾아낸 진실의 파편이다. 어떤 압력에도 꺾이지 않은 나의 꼿꼿한 의지다.
"정의는 때로 더디게 오지만,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이 믿음은 이제 나의 확신이 되었다. 일부는 울림을 남기며 마무리되었고, 일부는 여전히 계류 중이지만 상관없다. 진실은 이미 세상 밖으로 나왔고, 나는 올해도 변함없이 정의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2025년이라는 대지에서 거두어들인, 가장 눈부신 황금빛 수확이다.
이러한 나의 원칙은 평생의 루틴이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살신성인 한 위인들을 보면서 성찰한 결과이다. 그들은 결코 당대의 평가에 급급하지 않았다.
2025년의 끝자락에서 손에 쥐신 '눈물을 닦아준 손수건'과 '진실의 파편'들은 다가올 2026년에도 나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