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를 웃게 만든 장면: 50년 만에 검거한...
<면학의 서, 양주동>2025년 올해 나를 웃게 만든 장면: 50년 만에 검거한 ‘우수마발’ 영문법 미제 사건
올해 나를 웃게 만든 장면은 2025년 어느 여름날, 50년 전에 쓰인 글의 주인공이 그로부터 다시 50년 전의 웃음을 상상하며 나온 장면입니다. 올 한 해, 나를 가장 크게 웃게 만든 장면은 TV 예능도, 화제의 영상도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다시 꺼내 읽은 양주동 박사의 수필 〈면학의 서(勉學의 書)〉 속 한 대목이 그 주인공입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배를 잡고 웃느라 자판을 제대로 치기 힘들 정도입니다.
100년 전의 양주동, 50년 전의 박성기를 홀린 '비기(秘記)'
수필 속 학생 양주동은 ‘3인칭 단수’라는 개념을 몰라 밤낮을 고민하다, 눈길 30리를 걸어 읍내 교장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젊은 신임 교원에게서 마침내 평생의 숙제를 풀어줄 답을 얻어옵니다.
"내가 일인칭, 너는 이인칭,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溲馬勃, 소 오줌과 말똥)이 다 삼인칭 야라."
양주동 학생은 그 답을 적은 메모를 들고 왕복 60리(24km) 길을 돌아와, 저녁도 굶은 채 밤새도록 그 문장을 읽으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기뻤을지 상상이 갑니다. 나중에 양주동 선생은 석학이 되어 수필의 백미인 <면학의 서>라는 글을 남기면서 그 에피소드를 삽입합니다.
저는 그 글이 좋아서 달달 외우다시피 하였습니다. 50년 전 중학교 시절의 나 역시 이 글을 읽으며 "아!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100년 전의 양주동 학생도, 50년 전의 나도, 그 '우수마발'이 영문법의 모든 비밀을 담은 대단한 비기(秘記)인 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단수(Single)를 찾으러 가서 복수(Plural)를 들고 오다
그런데 2025년의 어느 여름날, 다시 읽은 이 장면에서 나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의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평생을 법리를 따지고, 수사 현장에서 단서를 쫓으며 살아온 저의 '직업병'이 발동한 것입니다.
'증거는 명확해야 하고 논리는 빈틈이 없어야 하는 세계'에서 평생을 보낸 제 눈에, 이 '우수마발' 일화는 '논리적 실종 사건'으로 다가왔습니다. 영어 문법의 핵심은 인칭(1, 2, 3인칭)과 수(단수, 복수)의 조합입니다.
3인칭 단수: 그/그녀/그것(He, She, It-단수) → 동사에 -s를 붙이는 주인공입니다. 양주동 선생님이 그토록 알고 싶었던 핵심은 바로 이 '3인칭 단수'였습니다. 수사관의 언어로 말하자면, 범인을 특정할 결정적 '단수'의 증거를 찾으러 간 셈입니다. 즉, 양주동 학생이 알고 싶었던 것은 바로 3인칭 단수인, He, She, It였습니다.
하지만 신임 교원의 답은 어땠습니까? "나와 너 빼고 다(우수마발)!" 분명 단수를 찾으러 60리를 갔는데, 정작 손에 쥐고 온 것은 단수가 아닌 복수(Plural)였습니다. 소 한 마리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따지기도 전에 "세상천지 소똥 말 오줌이 다 범인이다!"라고 뭉뚱그린 답을 받아온 것이지요.
아마 그 신임교원이 3인칭 단수는 'He, She, It'이고, 이것이 주어로 쓰이는 문장에 동사에는 's'를 붙이고, 3인칭 복수는 they인데, 이때 동사는 's'를 안 붙인다. 그리고 It의 복수형은 they이지. it’s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내가 일인칭, 너는 이인칭,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溲馬勃, 소 오줌과 말똥)이 다 삼인칭 야라."라고 인칭 설명만 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웃음이 생기는 장면은 100년 전의 양주동 학생도, 50년 전의 저도 단수·복수의 개념을 전혀 몰랐기에 그것이 오답인 줄도 모르고 그저 옳은 문법이자 진리인 줄로만 알고 달달 외웠다는 점입니다.
우리 교육이 선사한 집단적 ‘우수마발 세례’
이 논리적으로 구멍 숭숭 뚫린 이야기를 ‘면학의 귀감’이라며 국어 교과서에 버젓이 실어, 70년대 대한민국의 수많은 중학생에게 가르쳤던 우리 교육의 모습 또한 최고의 해학입니다. 우리 모두는 50년 넘게 ‘단수’는 잊은 채, 그저 세상이 소똥 말 오줌으로 나누어진다는 강렬한 비유에 취해 집단적 최면에 걸려 있었던 셈입니다.
아카시아 가로수 소년, 50년 만에 다시 교과서를 펴다
중학생 시절, 당시 국어책에 실린 "아카시아는 가로수로는..."이라는 문장을 비문이라고 봤습니다. '는'이라는 조사가 중복되는 문법적 오류를 참지 못해 문교부에 편지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아카시아가 가로수로(는)"가 맞지 않느냐는 제 지적에, 놀랍게도 그다음 해 교과서가 수정되었습니다.
50년 전 교과서의 비문을 바로잡았던 소년도, 그때는 영어를 잘 몰라 해결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100년 전의 양주동 학생과 50년 전의 나를 동시에 홀렸던 '우수마발 미제 사건'을 해결하며 웃고 있습니다.
이 포복절도는 비난이 아닙니다. 옛 스승님의 인간적인 허실(虛實)에 대한 반가운 인사입니다. '독서백편 의자현'이라더니, 정말 수십 년을 지나 백 번쯤 곱씹으니 이제야 그 속의 엉뚱한 코미디가 보이며 웃음이 납니다.
2025년의 여름, 나는 드디어 100년 묵은 영문법 미제 사건의 진범을 검거했습니다. 범인은 '3인칭 단수'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우수마발 복수형'이었습니다. 50년 전 문교부를 상대로 승소했던 소년은, 이제야 비로소 양주동 박사의 수필 속에서 진짜 웃음의 의미를 찾아내며 이 오래된 사건을 종결합니다.
아, 아직도 웃음이 멈추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