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생활의 달인', '인생의 달인'

by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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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생활의 달인', '인생의 달인'


송파구청 옆 석촌호수를 지나 방이삼거리에 이르면, 수많은 차가 쉴 새 없이 오가는 길목에 한 타이어 정비소가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한 남자를 응원하며 지켜봐 왔습니다.


20년 전, 그는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 놀라운 기술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타이어 교체의 귀재였습니다. 하지만 제게 그는 화려한 방송 속 주인공이기보다 첫인상부터 참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얼굴에 ‘성실’ 두 글자가 정직하게 쓰여 있던 사람, 매일 아침 팔을 걷어붙이고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의 성실한 이웃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그곳은 소박한 타이어 교체소였습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낡았던 가게는 번듯한 건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정비소 외에도 광택, 코팅, 세차장, 사무실과 고객 대기실까지 겸비한 규모 있는 일터가 되었습니다. 함께 땀 흘리는 직원들도 여럿 늘어난 당당한 사업체가 되었습니다.


보통 그 정도 성공을 일구면 현장에서 물러나 뒷짐을 질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가장 먼저 현장을 누빕니다. 타이어 휠을 잡아채고 볼트를 조이는 그의 팔뚝 근육에는 20년 세월의 훈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근육은 단순히 힘의 상징이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현장을 지켜온 ‘장인 정신의 결정체’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손바닥만 한 타이어에 담아내는 생명의 무게를 잘 압니다. 육중한 자동차가 지면과 맞닿는 유일한 곳은 손바닥 네 개 남짓한 타이어 면적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수백 가지 타이어 종류와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기호 속에서도, 그는 찰나의 순간에 최적의 해답을 찾아냅니다. 거침없는 손길로 타이어를 분리하고 새 생명을 불어넣듯 장착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그에게 타이어 교체는 단순한 소모품 교환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이 탄 자동차의 ‘안전한 내일’을 설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켜온 부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기술의 달인인 남편이 차의 하체를 든든히 받쳐준다면, 부인은 특유의 따뜻함과 세심함으로 고객의 마음을 살뜰히 어루만집니다.


거친 기계음이 들리는 작업장 한편에서 피어나는 부인의 친절은, 이곳을 단순한 정비소가 아닌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땀 흘리며 서로를 북돋는 뒷모습은, 길을 지나는 수많은 이들에게 말 없는 감동과 위로를 전해줍니다.


타이어를 매년 교체하는 것은 아니기에 제가 직접 방문하는 횟수가 많지는 않습니다. 가끔 지인의 승용차를 끌고 이곳 ‘송파 미쉐린’을 찾을 때면 정품과 안전을 강조하는 그의 원칙에 다시금 신뢰를 느낍니다.


얼마 전, 갑자기 타이어 공기압이 부족하여 이곳을 찾았습니다. 바쁜 아침 시간이라 실례가 될까 미안한 마음으로 부탁했지만, 그는 역시나 깔끔하게 처리해 주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지갑을 꺼내려 하자 그는 환한 미소로 손사래를 칩니다. 단골인 저만 그를 알 뿐, 그는 제가 누구인지 잘 모를 텐데 말입니다.


문득 한 달 전, 자전거 공기압을 보충하러 갔을 때 당연한 듯 3,000원을 받던 어느 자전거 대리점 사장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졌습니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작은 이익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달인의 넉넉함이 그를 더 크게 보이게 했습니다.


자주 보지 못해도 창밖으로 슬쩍 보이는 그의 활기찬 움직임만으로도 제 하루는 든든해집니다. '아, 저분은 오늘도 저렇게 정직하게 삶을 일구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20년 전 방송의 빛나던 순간에 머물지 않고, 매일매일 자신을 갱신하며 더 큰 나무로 성장해 온 타이어 달인. 그의 일터는 이제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믿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팔을 걷어붙이고 타이어와 씨름하고 있을 이름 모를 그의 뜨거운 하루를 응원합니다. 그가 매일 갈아 끼우는 것은 어쩌면 타이어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잊혀가는 '기본과 원칙'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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