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가산 보문사를 찾은 아버지의 기도
강화 석모도, 그곳은 나에게 단순한 섬이 아니다. 43년 전, 해병대 작전부사관으로, 때로는 중대장 직무대행으로서 거친 바닷바람을 맞았던 곳이다. 그곳은 청춘을 바쳤던 나의 최전방이자, 인생의 뜨거웠던 '숙제'들을 풀어갔던 제2의 고향이다.
당시 나는 주둔지를 떠나 오토바이와 지프차에 몸을 싣고 삼산면의 험한 해안선을 누비는 임무를 수행했다. 상리와 어류정의 분초를 순찰하며 경계 태세를 다잡았고, 주민들의 어로권 확대를 위해 어촌계장의 뜻을 대폭 수용한 어선 출항 허가를 단행했다.
군의 반대로 지연되던 서검도 철탑 공사 허가를 위해 동분서주하여 성사시켰으며, 최전방 주민들의 생활 불편을 해소하고 군의 지원을 강화하는 따뜻한 해병의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조류 연구를 위해 대송도를 찾은 윤무부 교수의 출입을 지원하고, 외포항과 말도를 잇는 서해 끝단의 안보를 책임지는 것이 지휘관으로서 나의 지상 과제였다.
그 시절 낙가산 보문사는 나에게 '영험한 사찰'이기 이전에 '협력의 현장'이었다. 군부대의 남는 된장을 공양하고 사찰의 사용한 양초를 수거해 오던 물물교환 계약을 맺었다. 당시 강화 서해안 도서 지방에는 양초가 필요한 군 초소와 민간인이 많았기에, 양초 수거를 위해 매주 문턱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의 눈은 절경이 아닌 경계선을 향해 있었고, 마음은 부대의 안위를 먼저 살폈다.
전역 후 사회에서도 나의 삶은 늘 '리더'의 자리였다. 10년 전, 6,800세대가 넘는 잠실 파크리오 아파트의 회장직을 맡았을 때, 관리소 직원들을 대동하고 보문사를 탐방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서검도 철탑 공사 에피소드를 꺼냈더니, 곁에 있던 정경환 관리소장이 깜짝 놀라며 본인이 바로 그 서검도 출신이라고 고백했다.
"회장님, 제가 바로 그 서검도 청년입니다. 어린 시절 어두컴컴하던 우리 섬에 전기를 넣을 수 있게 허가해 주신 해병대 간부가 바로 회장님이라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덕분에 저희 섬 사람들이 비로소 밝은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오래전에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서검도 철탑 공사를 위해 해결했던 그 '숙제'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은혜가 되었음을 확인한 순간, 전율이 일었다.
신라 선덕여왕 시절부터 자리를 지켜온 보문사 석실(나한전) 앞, 굽이굽이 세월을 견뎌온 700년 된 향나무 앞에 서니 나를 알아보는 가족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온다. 그 정겨운 인사를 뒤로하고 눈썹바위를 향해 419개의 계단을 올랐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수록 시야가 넓어졌다.
오늘, 43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모든 직책의 무게를 내려놓고 '인간 박성기'로서 보문사 계단에 섰다. 이제 막 사업의 바다에 돛을 올린 아들과 묵묵히 사업가로 성장한 동생의 손을 잡고서 말이다.
마침내 보문사 주지 이화응 스님과 금강산 표훈사 주지 배선주 스님의 발원으로 1928년 조각된 마애불 앞에 섰다. 겸재 정선이 금강산전도를 그리기 위해 드나들었던 그 유서 깊은 표훈사의 기운이 이곳 강화까지 이어져 있는 듯했다.
마애불 앞에 서니 강화 서해의 서검, 미법, 볼음, 주문, 말도 등 16개 도서는 물론 용유도와 장봉도, 그리고 희미하게 영종도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예전엔 '감시의 대상'이었던 그 광활한 바다가 오늘은 한없이 평화로운 축복의 땅으로 다가왔다.
보문사 입구 상점에서 상인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수제 한과 몇 개를 사 들고, 젊은 날의 추억이 서려 있는 삼산면 사무소와 파출소 근처에서 여유롭게 브런치를 나눴다. 삼산초등학교 외곽을 둘러보며 당시의 감회에 젖기도 했다. 항포, 하리와 상리까지... 예전엔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피던 작전 구역이었던 그곳들을 이제는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으며 한 바퀴를 돌았다.
석모대교를 건널 때 곧장 보문사로 가지 않고 석포리 포구로 향했다. 당시 석포리는 외포항에서 카페리호가 왕래하던 곳이었다. 전역 후에 들려온 가슴 아픈 해상사고 소식을 떠올리며 안전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겼다. 나는 한때 거센 풍랑으로 스스로 선박 출항 금지를 내려, 멀리서 면회 온 친구와 만나지 못한 일을 회상했다. 외포리 항에서 손을 흔들며 아쉽게 발길을 돌리던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보문사의 오늘은 평화로웠다. 내가 지켜낸 평화로운 바다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아들과 든든한 동생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내가 지켰던 이 땅의 기운이, 정경환 소장의 눈을 밝혀주었던
그 정성이, 이제 시작하는 내 아들과 수성하는 동생의 앞길에
든든한 등대가 되게 해주십시오."
추억의 부대 터와 삼산면의 골목들을 둘러보고, 작년 DMZ 회원들과 갔던 창후리항과 교동시장에 들러 추억의 쌍화차도 한 잔 마셨다.
43년 전의 청년 지휘관이 맺어놓은 귀한 산천과 인연들이 이제 아들의 사업 번창이라는 큰 열매로 맺어지길 소망한다.
평생을 누군가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앞장서 걸어왔던 나의 발자국이, 이제는 내 가족의 앞길을 비추는 가장 따뜻한 빛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