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임진왜란, 실천 유학자의 비장한 결단(1590년

by 박성기




1. 통신사 보고의 딜렘마와 김우옹의 실용적 판단 (1590년)


1590년, 조선은 끊임없이 불안을 야기하는 왜국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통신사 일행을 파견했습니다. 정사(正使)로는 서인의 거두 황윤길(黃允吉)이, 부사(副使)로는 김우옹의 오랜 동문이자 동인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성일(金誠一)이 임명되었습니다. 김우옹은 김성일의 부사 임명에 지대한 역할을 하며, 나라의 외교적 중책을 친구에게 맡기는 데 힘을 실었습니다.


두 통신사가 귀국하여 상반된 보고를 올렸을 때, 조정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황윤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눈빛이 매섭고, 병장기가 넘쳐나니 필시 침략할 것"이라며 전쟁 임박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김성일은 "히데요시는 쥐와 같아 두려워할 만한 인물이 아니며, 병력 이동은 보지 못했으니 침략 징후는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김우옹은 깊은 고뇌 끝에 김성일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의 지지는 동문 간의 사적인 의리가 아닌, 이미 정철의 문제 등으로 동인과 서인의 대립이 극에 달한 조정의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김우옹은 '전쟁 임박'이라는 보고가 가져올 극심한 민심 동요와 국론 분열을 우려했습니다. 국정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세가로서, 당장의 공포 조성보다 외교적 안정과 내실 다지기가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비장하고 실용적인 판단은 훗날 임진왜란 발발이라는 비극적 현실 앞에서 김우옹에게 씻을 수 없는 책임감과 거대한 논란을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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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김&장, FBI, 법무사협회, 서울시법무사로서 40년을 법조(행정)분야에 종사하였습니다. <생활법률, 창과 방패>, 자기계발, 역사인물 등 다양한 브런치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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