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경의(敬義)의 유산, 동강집(東岡集)

by 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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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경의(敬義)의 유산, 동강집(東岡集)(1599년 ~ 1603년)




1. 전후 복구의 책임과 은퇴의 고뇌 (1599년)




임진왜란의 종전 후, 김우옹은 흐트러진 국가 기강을 바로잡고 피폐해진 민생을 수습하는 전후 복구의 책임을 짊어졌습니다. 그는 병조와 이조 등 주요 관직을 역임하며 전시 시무책에서 제시했던 실용적인 개혁 방안들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전란이 끝난 조정은 곧바로 당파의 재편성이라는 새로운 회오리에 휘말렸습니다.




김우옹이 속했던 동인(東人)은 북인(北人)과 남인(南人)으로 분열되었는데, 이는 스승 남명 조식의 수제자였던 정인홍이 광해군을 지지하는 강경 북인의 영수로 부상하고, 류성룡, 이원익 등 온건파들이 남인을 형성하면서 빚어진 숙명이었습니다. 김우옹은 스승의 학통을 이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급진적이고 독선적인 정인홍의 행보를 경계하며 온건 남인의 입장에 가까이 섰습니다. 그는 당쟁을 넘어선 치세를 원했지만, 당파를 벗어날 수 없는 조정의 현실에 깊은 회의를 느꼈습니다.




2. 북인(北人) 정인홍과의 학통(學統) 갈등




김우옹은 북인의 영수가 된 정인홍(鄭仁弘)과 피할 수 없는 갈등을 겪었습니다. 정인홍은 남명 조식의 학통을 독점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퇴계 이황을 비판하며 학문적 배타성을 드러냈습니다. 김우옹은 이를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대의를 해치는 행위로 규정하고 비판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스승 남명 조식의 정신적 유산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정인홍은 스승의 위패를 문묘(文廟)에 종사(宗祀)하는 문제를 주도하면서, 그 권위를 독점하려 했습니다. 김우옹은 스승의 정신이 당파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막고자 했으나, 이는 동문 간의 격렬한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김우옹은 학문적 깊이를 중시하고 온건함을 지향하며, 강경 북인들의 파벌 정치를 견제하는 마지막 양심의 선비역할을 수행했습니다.




3. 선조와의 마지막 독대와 '동강집(東岡集)' 편찬




김우옹은 말년에 이르러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여러 차례 청했습니다. 지친 심신과 깊어진 당쟁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습니다.




선조는 그의 굳건함과 청렴함을 높이 사, 그가 사직할 때마다 어의(御衣)와 하사품을 내리며 만류했습니다. 특히, 김우옹이 관직에서 완전히 물러나기 직전, 선조는 그를 불러 깊은 감사와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김우옹은 이 마지막 자리에서도 군주의 마음가짐과 나라의 기강에 대한 직언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정치의 회오리를 뒤로하고 남은 생을 학문 정리에 바쳤습니다. 임진왜란 때의 방대한 시무책과 평소의 학문적 깊이가 응축된 문집인 《동강집(東岡集)》을 완성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이 문집은 그가 평생 지켜온 경의(敬義)의 정신과 실천적 경세론을 집대성한 역작이었습니다.




4. 대학자이자 충신, 영원한 문정(文貞)의 시호




1603년, 김우옹은 향년 64세를 일기로 고향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서거 소식에 조정은 슬픔에 잠겼으며, 왕은 '대학자이자 충신'이었던 그에게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문(文)은 학문에 밝고 경륜이 탁월하며, 세상을 교화하는 데 힘쓴 이에게 내리는 호칭입니다. 정(貞)은 곧고 깨끗하며, 의를 굳게 지켜 흔들림이 없었던 이에게 내리는 호칭입니다.




이 '문정'이라는 시호는 김우옹의 일생을 관통했던 두 가지 가치, 즉 학문적 깊이(文)와 난세에 굴하지 않은 강직한 실천(貞)을 완벽하게 요약한 평가였습니다. 그는 비록 퇴계나 율곡처럼 학파를 창시하지는 못했지만, 남명 조식의 준엄한 정신을 가장 치열한 현실 정치 속에서 구현해 내고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숨겨진 공신으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경의의 유산은 후대 사림들에게 '행동하는 지성'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진주 용강서당


*소설 동강 김우옹은 6회 연재, 이것으로 종료합니다. 기회가 닿으면 여기에 동강 김우옹의 아들이야기를 보태고, 한명기교수님의 의견을 보태서 내용은 계속 보완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적 기록이 단절되어 일부 사실은 역사적 기록과 기록 사이를 연결하는 브리지를 만들어 '소설'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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