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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직원 Feb 20. 2022

대기업 신사업 TFT가 늘 실패하는 이유

오늘 사내에서 신사업 TFT 발표회가 있었다.

주제는 메타버스와 NFT


한시간 가량 발표회를 통해 느낀 건

"이 프로젝트는 100% 실패한다"

"대기업 신사업팀이 왜 실패하는지 알겠는걸"

이었다. 


우리회사는 중소기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할만한 행동들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오늘은 왜 신사업 TFT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트렌드에 뒤쳐진 아저씨가 주도하는 프로젝트


TFT를 총괄하고 발표를 주관했던 전략기획팀 팀장님은 서두에 이런 얘기를 했다.

사실 제가 게임을 잘안해요... 제페토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메타버스와 NFT로 신사업을 하는 양반들이 게임을 잘 안한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제야 TFT 구성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사 50대, 개발자 출신 / 게임 경험 無

팀장 40대, 전략기획팀 / 게임 경험 無

팀원 40대, 디자인팀 / 역시 게임 경험 無

팀원 30대, 전략기획팀 / 게임 경험 無

팀원 30대, 디자인팀 / 애니팡 조금 해봄...


게임. 특히 MMORPG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메타버스와 NFT를 분석하는데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은 과연 메타버스가 뭐고 게임이랑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알기는 할까?


우리회사에는 게임 관련해서 참 뛰어난 인재들이 많다.

① 오리 40인부터 25인까지 정공 공대장을 역임한 와우에 인생을 바친 김과장

② 피니지 시절 성혈 라인기사를 거쳐 린엠에 아반떼 한대를 박고나서 현타가 온 최과장

③ GTA5 플레이 1200시간 / 야숨 플레이 600시간에 빛나는 명예 로스산토스, 하이랄 주민 서점군

④ 아이온에서 와이프를 만나 결혼까지 한 이차장


회사내에는 게임이라면 틀니 수준을 넘어 화석같은 인간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데 정작 우리는 회사에 메타버스 TFT 같은 게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사실 우리라고 대단한 기획안이 나올 건 아니다. 그래도 게임고인물들은 메타버스가 뭔지, 가상세계가 뭔지 정도의 기본적인 이해는 있다. 기본적인 산업의 이해나 경험 없이, 어유 저게 핫한가벼라는 이유로 TFT를 꾸리고 전혀 맞지 않은 인원들을 꾸려 세팅한 TFT가 과연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비지니스에 특화된 분석


전략기획팀 팀장님은 이 회사에서 몇 안되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대기업 출신에 인품도 능력도 훌륭하다. 그 명성과 기대답게 그가 만든 보고서는 훌륭했다. 자료조사도 완벽했고 기승전결이 있는 데다가 결론까지 좋았다. 그가 만든 보고서가 비즈니스에 치중되어 있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보고서는 온통 돈 얘기뿐이었다. 제페토는 몇 명이 쓰고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있으며 게더타운을 세팅하면 세팅비로 얼마를 받을 수 있고 제페토에서 아이템을 만들어 팔면 얼마를 받을 수 있나, 우리는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의 수익을 얻을 수 있나. 같은 얘기로 가득 차 있었다.


왜 이런 보고서가 나온 걸까? 간단하다. 팀장님이 메타버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제대로 된 보고서를 썼다한들 그런 보고서가 윗분들의 입맛에 맞을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회사는 메타버스 신사업 같은 걸 할 역량이 안된다. 위에서 알아보고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라고는 하는데 메타버스가 뭔지도 모르겠고 결과물은 내야겠고 하니 보고서에 돈 얘기밖에 할 게 없는 것이다.


팀장님의 속마음은 이랬다.

"메타버스는 다 사기이고 설령 비지니스 기회가 있다 한들 우리회사는 그걸 할 수 있는 역량이 안된다"


윗분들이 원하는건 그들의 입맛에 맞게 섹시하게 잘빠진 보고서다. 결국 대부분의 시장분석보고서나 사업계획서는 현실보다 윗분들이 원하는 결과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다. 암울한 현실을 애써 외면해야 하니 보고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숫자놀음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산업의 규모는 얼마고 성장성은 얼마고 우리가 여기에 진출하면 얼마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뭐 그런 류의 보고서 말이다.


팀장님은 윗분들에게 진실의 빨간약을 먹일만한 용기가 없었다. 

우리는 직장인이니까.




2030 TFT 구성


보고서 말미의 결론은 이랬다.

최신 트렌드에 능통한 사내 2030 직원을 주축으로 TFT 구성


낼 수 있는 결론 중 가장 최악이다. 전후 사정을 알고 있던 나로써 앞의 내용들은 그의 입장에서 어느정도 이해가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결론은 비겁했다. 이 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팀장님 선에서 끝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뭔지도 모르겠고 책임은 지기 싫고 빨리 발은 빼고 싶으니 엄한 2030 직원들을 끌어들여 귀찮은 일을 짬처리한거다.


영문도 모르고 TFT에 끌려간 직원들은 무슨 죄인가. 정작 책임져야 할 헤드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띵가띵가 놀고 있으면서 아래 직원들에게 업무를 짬 처리시키는 것도 모자라 책임까지 떠넘기는데 과연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올까? 신사업이 실패하는건 젊은 직원들의 역량과 패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전제 자체가 글러먹어서 그런거다. 원인과 과정이 개판인데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리 있겠는가?


많은 대기업들이 2030을 주축으로 한 젊은 감성을 내세워 신사업을 추진한다. 그런데 이미 결론은 대충 정해져있고 거기서 2030이 할일은 없다. 사업 자체가 노답인데 자꾸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한다. 위에서 답이 안나와서 짬처리 한건데 그들인들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까? 누가봐도 성과와 과실이 확실한 일이었으면 윗분들이 앞장서서 채 갖겠지... 답이 안나오는 사업이니까 결국 아래까지 떨어지는거다. 같은 어른으로써 몹시 비겁하다.




이번 사업발표회는 전형적으로 망할 수 밖에 없는 TFT의 표본이었다.

 유행이고 남들 다 한다니까 조급해진 윗선에서 사업지시

 최신 트렌드와 산업에 무지한 헤드가 프로젝트를 주도

 조사해보니 진행이 어렵거나 성공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게됨

 윗분들의 입맛에 맞게 대충 그럴듯한 보고서 작성

 뭔지는 모르겠고 책임지기는 싫으니 젊은 직원들에게 짬처리


그동안 수없이 망해가는 대기업의 신사업 TFT를 옆에서 지켜보며 망해가는 과정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성공방정식은 달라도 망하는 공식은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하는 신사업이 양산되는건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저 윗분들 때문에. 


왜 젊고 열정에 가득차 있는 직원들이 자꾸 회사를 그만두고 의견을 내라고 하면 다들 벙어리가 되는지. 윗분들은 요즘애들은 패기도 열정도 없다고 투덜대는데 그 패기와 열정을 꺾은 건 과연 누굴까?


회사가 망해가는건 철저하게 내부의 문제다. 신사업이 자꾸 실패한다면 외부 환경을 탓하기 전에 내부부터 먼저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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