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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직원 Dec 14. 2023

좋은 기획자의 덕목이란 뭘까?

(PM PO가 되기 위해 필요한 다섯가지 필수덕목)

한가한 주말 오후

기획 지망생들 앞에서 기획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던 서점군에게 수강생 한명이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강사님 그래서 좋은 기획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은 뭔가요?


순발력과 상황 대처능력이 빵점이었던 서점군은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한번도 좋은 기획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뭔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평소 기획자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것이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던 서점군. 몇명의 빌런을 만나며 좋은 기획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좋은 기획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필수 덕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질문에 버벅대던 서점군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던 유림양에게 뒤늦게 나마 이 글을 바칩니다




첫번째 덕목, 꼼꼼함


누군가 저에게 기획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뭐냐고 묻는다면

첫번째도 꼼꼼함
두번째도 꼼꼼함
세번째도 꼼꼼함

이라도 대답할겁니다.


나는 꼼꼼한 성격이 아니다. 덜렁대거나 무언가를 자주 깜빡한다.라면 저는 기획자라는 직업을 하지 않기를 권합니다. 당신의 잘못된 직업선택이 여러 사람을 괴롭힐 수 있거든요.


기획자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꼼꼼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화면 설계단계부터 비니지스적인 검토와 기능, 정책검토 등 다양한 체크 포인트를 빠짐없이 검토해 설계에 반영하고 구현 시 프로젝트가 의도대로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프로젝트란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겁니다. 하나가 빠져도 문제없이 돌아가기도 하지만 작은 부품 하나가 고장 났다는 이유로 멈추기도 하죠.


설계 단계에서 깜빡하고 작성하지 않은 디스크립션 하나가

구현 단계에서 확인하지 못한 이슈 하나가

테스트 단계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오류 하나가

프로젝트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기획자에게 필요한 꼼꼼함은 사회에서 말하는 꼼꼼함과 기준이 좀 다릅니다. 저만해도 일년에 잃어버리는 우산이 10개가 넘는 왕 덜렁이이고 저희 팀장님은 각종 기념일과 가족행사를 늘 까먹는 건망증 환자입니다. 그래도 저나 팀장님이나 일할 때 꼼꼼하다는 소리를 듣는편입니다. 기획자로써 갖춰야 될 꼼꼼함이 단순히 기억력이라던가 물건을 잘 간수하는 능력을 말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기획자로써 갖춰야 될 꼼꼼함이 뭐냐라고 물으신다면 한가지 단어나 문장으로 딱집어서 정의하긴 어렵습니다만 제가 만나봤던 수많은 기획자들 중 일 잘하고 꼼꼼한 기획자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편집증이나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집요하거나 무언가에 집착하는 성격이었다는 건데요. 보통 이런 성격이 기획자로써 적합한 꼼꼼함을 탑재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저는 소설책, 특히 작가 전집이나 시리즈물을 좋아하는데요.

1권부터 10권이 책장에 아름답게 꽃혀있는 것을 볼 때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한권이라도 책이 제자리에 꽃혀 있지 않으면 잠이 안옵니다. 강박증 초기인 것 같습니다. (약간 미쳐있음)


제가 지금까지 가르쳤던 후임 중 가장 꼼꼼했던 진석군은 대학생 시절 편의점 알바를 했었다고 하는데요. 본인 피셜 그 동네에서 이름난 편의점 정리맨이었다고 합니다. 마구 쌓여있는 아이스크림 무더기를 참을 수 없었다고. 라벨이 한줄로 쫙 보이게 해놓지 않으면 뭔가 할일을 다 끝내지 않은 느낌이었다나 뭐라나... (약간 제정신 아님)


이전 회사 팀장님이었던 최팀장님은 제가 봤던 팀장 중 가장 꼼꼼하고 유능한 분이셨는데요. 모든 면에서 너그럽고 관대한 어른이었던 최팀장님이 유일하게 참지 않았던 게 본인 스마트폰 액정에 묻은 지문과 개기름이었습니다. 최팀장님은 안경을 쓰지 않았지만 스마트폰 액정을 닦기 위해 수많은 안경닦이를 구입했고 마침내 안경닦이의 재질과 세정력에 통달한 안경닦이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약간 병적임)


제가 수년간 주위 기획자들을 관찰해 본 결과 약간 편집증적이거나 강박증을 가진 기획자들이 업무에서도 그 기질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시하고 넘어갈만한 사소한 일을 넘기지 못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이런 성격은 훈련으로 길러지지 않습니다. 타고나야 되죠.




두번째 덕목, 고집과 뚝심


기획자라면 투철한 신념과 적당한 뚝심이 있어야 합니다.

기획자가 자기만의 기준이 명확하고 뚝심이 있지 않으면 타인에게 휘둘리기 쉽습니다. 나이로 때로는 연차나 경력으로 기획자를 찍어누르고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도처에 우글거리니까요.


기획자가 A라는 기능을 기획했다고 해봅시다. 개발자가 이 기능을 A-1로 바꾸자고 제안합니다. 이때 기획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1) A를 유지하고 개발자를 설득한다

2) A-1로 변경한다


기획자의 대응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애초 기획안부터 잘못되어 개발자가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안을 제시한 것일 수도 있고 개발자가 생각하기에 더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단순히 개발하기 편한 방법으로 제안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개발자가 자기 개발하기 편하자고 기능을 수정하거나 축소하자고 요구한다는 기획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충 수용하고 넘어갈까요? 원안을 고수해야 할까요?


대부분 다 원안을 고수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면접에서도 다 그렇게 대답하죠. 그런데 실제 업무에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작업자가 기획자를 윽박지르거나 압박하는 건 흔한 일이고 때로는 교묘하게 진실과 거짓을 섞어(일정을 부풀린다거나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자기 편한 방식으로 유도하기도 합니다.


멋모르는 초보 기획자 시절에는 이런 것에 굉장히 많이 휘둘립니다. 기획에 대한 경험도 자기 기준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짬이 어느 정도 차면 대충 감이 올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기획자는 번민에 빠집니다.


- 저 자식이랑 말싸움하기 싫은데 대충 말 들어주고 넘길까

- 이거 되게 사소한 기능인데 이거 하나 없다고 괜찮지 않을까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고집과 뚝심입니다.

● 안돼 이건 필요해 무조건 해야 돼

● 그렇게 바꾸면 기획의도에서 달라져. 개발 기간이 많이 필요하더라도 이대로 하자

● 이렇게 해야 사용자 편의성이 좋아져



기획자라면 자기 기획에 대한 확신과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고집이 필요합니다. 자기 기획에 대한 확신은 어디서 오느냐? 내가 이 기획안을 얼마나 고민했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에 따라 기획의 완성도와 확신이 생깁니다. 고집을 부려서 피곤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야근을 한다거나 작업자와 말싸움을 해야 한다거나 그런 일들 말이죠. 그런데 옳다고 판단되면 그걸 밀어붙일 수 있는 고집이 있어야 합니다.


기획자로써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이 없고 뚝심과 고집이 없는 사람이 매너리즘에 빠지면 기획을 기계 찍어내듯 공산품처럼 찍어냅니다. 기준이 없으니 디자이너나 개발자의 말에 잘 휘둘리고 요건이 자주 바뀌죠. 작업자 입장에서 아주 최악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옳다고 판단되면 NO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뚝심과 고집을 가진 성격이 기획자로써 잘 맞습니다. (단 선을 넘으면 고집이 아니라 아집이 되기도 함)




세번째 덕목, 소통능력


기획이란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업무가 나 자신과의 싸움인 디자이너, 기계와의 싸움인 개발자와 달리 기획자는 프로젝트 시작부터 끝까지 사람과 만나고 부딪혀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스킬이 무엇보다 중요한 직업입니다.


사람을 대하는데 어려움이 있거나 사람과 부대끼는 걸 싫어하거나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저는 기획자란 직업을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프로젝트든 프로덕트든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각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라는 일념으로 업무에 임하는 워커홀릭형 팀원이 있는 반면 반대로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월급이나 받아가자 라는 마인드로 업무에 임하는 팀원도 있죠. 많은 서적들이 적절한 동기부여로 팀을 한가지 목표로 이끌도록 하는게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이라고 하는데요. 그건 동화 속에만 나오는 아름다운 이야기일뿐입니다. 실제로는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윽박지르고 하면서 프로젝트를 끌고 가는 거죠. 누가요? 니가요.


우리가 집을 짓는다고 해볼까요

디자이너가 원하는 것 : 고풍스런 디자인의 르네상스풍 프랑스 대저택

개발자가 원하는 것 : 디자인은 조금 투박해도 짓기 편하면서 실용적인 클래식하고 세련된 미국식 저택

기획자가 원하는 것 : 멋진 정원을 가진 일본식 목조 주택

프로젝트란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 3명이 모여 집을 짓는 것과 비슷합니다. 각자 다른 생각을 절충하고 조율 해 결과물을 내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고요.


이 세상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특히 기획자는 인간관계에 따른 스트레스가 극심한 편입니다. 많은 기획자들이 소통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이유로 3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둡니다. (경력직 PM PO를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 이건 주니어뿐만 아니라 시니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업계를 떠난 많은 선배님들이 귀농이나 귀촌을 택하셨는데요. 그분들이 떠나면서 이구동성으로 하신 남긴 말씀은 "이제 사람이 지긋지긋하다."였습니다.


- 나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5분 이상 스몰톡을 주고 받을 자신이 있다.
- 나는 항상 스몰톡이 장전되어 있다.
- 나는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극혐하는 사람이라도 아침에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런 분들만 기획을 하셔야 합니다. 소심하다거나 예민하다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말도 섞기 싫다. 자신이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기획을 안하는게 좋습니다. 본인이 괴롭거든요.  




네번째 덕목, 말빨 혹은 글빨


기획자는 기획안이나 기획의도를 남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거나 때로는 설득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기획자는 업무 특성상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획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 중 하나가 말빨 혹은 글빨입니다.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많은 기획자들이 한계를 느끼는 것도 이 지점입니다. 주니어 시절에는 말빨과 글빨의 중요성이 크게 체감되지 않거든요. 시니어가 되면서 회의를 주제하거나 단순 기획안이 아닌 상위 레벨의 문서를 작성하면서 말빨과 글빨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나', 혹은 '내가 이렇게 글을 못쓰는 사람이었나'를 자각하게 되는 것도 이 시기죠.


말빨과 글빨은 단기간에 훈련이나 학습으로 키워지지 않습니다. 타고나거나 유년 시절부터 꾸준한 훈련이나 학습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 보통이죠. 말빨과 글빨 모두 다 출중하다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평균 이상의  말빨이나 글빨 둘 중 하나는 꼭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극내향형인 인간이라 주목을 받으면 무릎이 호달달 떨리고 언어장애라 글도 잘 못쓴다. 이런 분들은 절대 기획을 하면 안됩니다. 남들이 괴롭거든요.




다섯번째 덕목, 융통성과 유연성


나는 일정한 사이클을 가지고 정해진 규칙 내에서 일을 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가이드가 없으면 일을 하지 못한다. 계획된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상황 대처 능력이 빵점이다. 이런 성향을 가진 분들은 기획자와 맞지 않습니다.


기획이란 업무는 늘 변동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일정이나 계획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슈가 튀어나와 계획에 차질을 생기는 일도 다반사죠. 때로는 말도 안되는 일정이나 계획이라도 어떻게든 머리를 짜내고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게 기획자란 직업입니다.


우리 팀에 A란 기능을 개발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고 가정 해봅시다.

주어진 시간은 5일, 그런데 가능한 일정을 산출해 보니 기획 2일, 디자인 2일, 개발 3일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틀이 오버되죠. 이럴 때 담당 기획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일정을 이틀 늘려달라고 한다.

2) 기획, 디자인, 개발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병행작업을 한다.


기획 > 디자인 > 개발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동시에 병행하는건 기획자 입장에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하나라도 삐끗하는 즉시 사고로 이어지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병행작업을 할 수 밖에 없는건 그것만이 일정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 업무에서는 기획, 디자인, 개발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기획서가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디자인을 하거나 디자인이 없는데 개발을 먼저 시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기획자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일정을 변경하거나 우선순위를 변경하는 융통성과 유연성을 발휘해야 될 때가 많죠.


기획이란 서핑보드에 몸을 싣고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파도가 올지 파도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파도에 흐름에 올라타 파도의 변화에 맞춰 파도가 가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뿐이죠.

당신은 파도에 몸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나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것이 아니듯 기획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반대로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획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따로 있는것은 아니지만 기획자가 되기에 적합한 성향은 있죠.


기획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기획자라는 직업에 적합한 사람인지 테스트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성인용 웩슬러 지능검사(K-WAIS-IV)입니다.

웩슬러 지능검사 4가지 항목 (언어이해, 지각추론, 작업기억, 처리속도) 중 언어 이해와 지각 추론 항목이 평균보다 높은 사람이 기획을 하기 적합한 성향일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행렬추론 점수가 높으면 뛰어난 기획자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오늘도 기획자를 꿈꾸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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