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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Sep 16. 2021

시작이 두려운 이들에게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나는 시작이 쉬운 사람이 아니다. 늘 그래왔다. 시작도 전부터 수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정말 이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됐는지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완벽주의 성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왕 시작하기로 한 거면 잘 해내고 싶었다. 늘 그것이 망설임의 이유가 되었다. 내가 진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만약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 두려움이 항상 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포기한 일들이 많았다.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오히려 내 인생에 계속 버티고 있는 장애물이었다. 



완벽히 준비가 되었을 때 시작하고 싶었다.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담담하게 맞이하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도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네 인생이 어디 그리 만만하든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시작했던 일이 뜻한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했던 일들이 생각지도 않던 성공의 경험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렇게 배워나갔다. 인생에 있어서 100퍼센트 완벽한 준비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바로 인생의 묘미라는 것을. 계획한 대로만 이루어졌다면 내가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실패한다고 해서 내가 이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그 당시에 실패라 생각했던 것들이 훗날 뒤돌아보니 나를 이만큼 단단하게 쌓아올려줬던 고마운 경험이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이제야 알겠다. 일단 시작하면 성공이든, 실패든 경험을 얻을 수 있지만, 시작하지 않는 모든 일에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걸. 뭐든지 잘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욕심을 조금만 내려둔다면, 훨씬 더 넓은 세상이 열린다. 실패의 경험이 내 존재가치를 규정짓지 못한다. 성공한 사람만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너무 진부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 누구나 알고 있고, 서로가 그런 말로 위로하며 다독인다. 그런데 정작 '나'의 실패에 대해선 너그럽지 못하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차라리 아무것도 얻지 않는 것을 택한다는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체험적으로 그렇게 배워왔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자라서도 똑같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어른이 된다. 안정적인 것만 선택하고 도전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잘 못해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 지금은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어. 계속하다 보면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엄마도 처음에는 못했는데 자꾸 하다 보니 잘하게 되었어. 그리고 계속해봐도 안되는 게 있을 수도 있어. 네가 못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그래도 괜찮아. 네가 일단 용기를 가지고 해보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해. 해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어. 네가 어떤 모습이건, 잘하든 못하든 엄마는 널 사랑하고 응원해.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에게 필요했던 말들. 아이들만큼은 그렇게 알고, 배우면서 자랐으면 좋겠다. 네가 겪는 일들이, 너의 성공과 실패가 너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너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응원받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시작'을 결심함으로 우리는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것이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면서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으며 천천히 걸을 수도 있고, 전속력으로 힘껏 달려갈 수도 있다. 햇빛이 쨍쨍 비추는 날 산책하듯 여유롭게 걸어갈 수도 있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두운 밤에 비틀비틀 걸어가다 지쳐 넘어질 수도 있다. 나를 따스하게 맞아주는 오솔길을 걸을 수도 있고, 한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든 가시밭길을 만나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냥 이런 날이 있으면 저런 날도 있는 것이다. 그런 날들을 지나, 그런 길들을 걸어, 마침내 그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내가 힘들 때 손 내밀어 나를 일으켜주는 이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먼저 주저앉아 있는 이에게 손 내밀기도 한다. 같이 손을 맞잡고 걸으며 그 따스한 온기를 전해 받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제외하고 목적지 도착 여부만을 가지고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그 길을 걷는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걸으면서 배우고, 성장하고, 단단해지니까. 

의미 없는 시간이란 없다. 그 '의미'라는 것을 누가 규정하는 걸까? 어제 본 드라마 대사가 생각난다. '인생은 두 가지 길이 있다 한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일단 시작부터 해보자. 우리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령 사회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 길을 걷는 중에 얻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성공이다. 드라마 대사를 조금 바꿔 써보고 싶다. 인생은 두 가지 길이 있다 한다. 하나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용기 있게 시작하고 그것을 행복이라 여기며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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