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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Sep 09. 2021

내가 새벽 기상을 잠시 내려놓은 이유

더 소중한 것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7개월을 넘게 지속하던 새벽 기상을 내려놓았다. 평생 하고 싶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놓고 싶지 않았던, 내 삶의 수많은 변화를 일으킨 새벽 기상. 그런데 이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잠시 새벽시간을 내려두었다. 




지난 11월, 아티스트웨이 책을 읽고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나는 그때 너무 지쳐 있었고, 우울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결혼하고 바로 임신하면서부터 시작한 전업주부로서의 삶 7년 차. 미혼일 때부터 아이와 육아,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적어도 아이가 세 돌이 되기 전까지는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일을 내려놓았다. 내 아이의 모든 순간을 내 눈에 담고 싶었고, 아이와 함께해 주고 싶었다. 친정에서 3시간 거리의 타지로 시집을 와서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아이를 키웠다. 남편은 늘 일이 바빴고, 주말에도 출근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또 같은 선택을 할 테니까. 그리고 둘째를 임신하고 친정 근처로 이사를 왔다. 아이가 둘이 되고 힘들긴 했지만 10분 거리에 사는 엄마가 늘 도와주셨다. 어느 순간에도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든든한 일이었다. 엄마로서 두 번째.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았다. 수유하느라 잠을 못 자서 힘들었던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몸과 마음이 조금 편해지니 이제서야 지난 내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육아하면서 엄마로서 치열했던 시간들. 이제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나'로 좀 살고 싶어졌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최선을 다해 조심하고 견디다 보면 이 시간들도 끝나겠지 하며 1년 가까이 살았다. 휴원 기간인데도 아이들 다 온다며 자꾸 등원을 권유하던 첫째 어린이집도 퇴소하고 아이 둘을 집에서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는 일상이 되었다.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 했다. 내년에도 또 지금과 같은 삶을 살아야 될 것이라 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내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빠져나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절망스럽던 찰나에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뭐라도 시작하고 싶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최적의 시간이었던 새벽. 그렇게 반년을 넘게 새벽은 나에게 하루 중 최고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나를 되찾았다. 엄마가 아니라 나로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다, 쉼이란 없는 것처럼. 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게 되었다. 가기 전까지도 망설였지만 집단면역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맞기로 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언갈할 때마다 쉽게 숨이 찼다. 백신 부작용인 거 같아서 병원에도 한 번 들렀는데 지켜보자는 말뿐이었다. 그리고 접종 후 2주가 지난 어느 금요일 밤, 갑자기 찾아온 가슴 통증에 자는 아이 둘을 맡겨두고 급하게 응급실을 찾았다. 내 인생 통틀어 첫 응급실 경험이었다. 새벽 내내 수액을 맞고, 여러 검사를 하고 병원을 나서니 동이 트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틈틈이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는데 너무 놀랐던 남편은 밤을 꼬박 새웠다. 검사 결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심근경색의 증상이긴 한데 좀 더 검사를 받고 싶으면 입원을 하든지, 아니면 나중에 외래로 가라는 말뿐이었다. 며칠 뒤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백신 접종자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나 외에도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꽤 있다니 여기서 위로를 얻어야 하는지, 아니면 더 큰 걱정을 안고 가야 하는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조금 괜찮아질만하니 2차 접종 날이었다. 2차가 힘들 거라는 의사의 말처럼 열이 나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가슴 통증은 없으니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어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제 다 지나갔을 거라고 안심했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접종 3주가 넘은 금요일, 몸살과 함께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친정에 아이들을 맡기고 코로나 검사를 받고 왔다. 그 후에 밤에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는데도 진통제 먹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 없이는 열이 나는 사람은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열이 좀 내렸다 싶더니 1차 때보다 심한 가슴 통증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약을 타왔지만 그래도 가슴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 주말에 또 응급실에 다녀왔다. 그렇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 삶에 천천히 스며들어왔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누워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남편이나 엄마 없이 아이들과 나만 있어야 하는 시간이 무서웠다. 내가 혹시라도 갑자기 쓰러진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놀라고 무서울까 싶어 마음이 쓰였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이대로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은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났는데 눈을 뜨지 못하는 엄마를 발견한다면 평생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될까 싶었다. 이 시간이 마지막이면 어떠나 하는 마음에 그냥 아이들과 있는 시간들이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엄마의 자기계발' 시간에 밀려서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순간들이 미치도록 후회스러웠다. 새벽 기상을 하면서 같이 깨는 아이들이 원망스러워 어떻게든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려 그렇게 노력했었는데 아이들이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났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엄마의 빈자리. 자면서도 그게 느껴졌던 거다. 내가 체력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포기하고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났더니, 아이들도 그 시간까지 같이 잠을 잤다. 충분하고 깊게. 홀로 맞이하는 조용한 새벽시간도 좋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눈을 마주하며 일어나는 아침도 그만큼 행복했다. 그래, 이만큼 달려왔으니 좀 쉬어가야 할 타이밍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흔히들 말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가 되는 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이라고. 아파보니 알겠다.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남들보다 한참 뒤에 있는 출발선에서 시작했다고 하니 어느 순간 마음이 조급해져 있었나 보다. 아직도 내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잠시 잊고 지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지 않다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좀 더 건강하게, 아이들과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의 이 순간을 조금 더 담고 싶다. 그것이 바로, 내가 잠시 새벽 기상을 내려놓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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