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누구에게나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하고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시간들. 지금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런 시간들이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 선택이 후회가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까. 지금의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후회의 순간'들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와 같다. 답답하고 따끔거리는데 내 힘으로 빼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흘러버리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내 선택을 되돌릴 방법조차 없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속의 주인공 노라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닥쳐온 현실이 버거워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눈을 떠보니 도서관이다. 학교 다닐 때 사서 선생님이었던 엘름 부인이 그 도서관에서 노라를 맞이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시곗바늘은 늘 12시 자정에 고정되어 있다. 노라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늘 후회로 남았던 선택의 순간들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때 남자 친구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때 아빠의 바람대로 수영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했더라면? 그때 오빠를 실망시키지 않고 밴드에 계속 남아 노래했더라면? 내가 했던 선택들을 되돌리고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나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남자 친구와 헤어지지 않고 결혼을 했다. 남자 친구가 원했던 것처럼 같이 펍(PUB)을 운영하며 살게 되었지만 그는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만다. 아빠의 바람대로 수영을 그만두지 않고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어 강연을 다니며 성공한 삶을 산 듯 보였지만 아빠와 엄마의 결혼 생활은 엉망이었다. 아빠는 바람을 피우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엄마는 병에 걸려 죽었다. 밴드에 남아 계속 노래를 했을 때는 엄청난 팬을 가진, 세계적으로 성공한 가수가 되었지만 오빠는 옆에 남아 있지 않았다. 몇 해 전에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그들 곁에 남을 수 있는 선택을 했다고 믿었지만 그 결과는 노라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여러 삶을 떠돌며 노라는 깨닫는다. 완벽한 행복이란 없다고. 그리고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등 돌리게 만들었다 생각했던 원래 자신의 삶(root life) 속에도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것이 남아있다는 것을. 'You don't have to understand life. You just have to live it.' 내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내가 어떤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애쓰고 이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살아가면 된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든,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내가 더 행복하고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 세상에는 변수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들을 내리지 않았다면 배울 수 없던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결론이 나와도 너무 쉽게 슬퍼하지는 말자. 아직 우리에게는 살아갈 많은 시간들이 있다. 가능성. 우리에게 아직 삶이 허락된다면, 우리는 어떤 것도 시작할 수 있고 우리가 하는 아주 평범하고 작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바꿀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선택을 해보고 싶은 순간들이 당연히, 나에게도 있다. 그리고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현실이 100퍼센트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삶의 어떤 다른 옵션들을 더한다고 해도, 삶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뀌지 않으면 완벽한 행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삶이란 나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인생의 세찬 파도가 밀어닥칠 때도 있다. 그때 내가 버텨나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도 나, 곧 내 마음이다.
노라도 결국은 원래 삶으로 돌아왔다. 많은 것들을 가진 삶이라고 해도 스스로 이루어 낸 과정들이 생략된 삶은 결코 내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들에 너무 연연하지 말도록 하자. 그보다는 앞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 무한한 가능성에 눈을 돌려보자.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작고 반짝반짝 거리는 나만의 소중한 것들을 찾고 다듬어 나가 보자. 내가 살아온 삶도, 지금의 내 삶도, 앞으로 살아갈 내 삶도 꽤 멋지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