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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Aug 26. 2021

독립, 정말 한 거 맞나요?

나의 첫 독립기


'나의 첫 번째 독립' 이란 주제를 듣고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부모님을 떠나 내 마음대로 생활했던 대학 입학 후의 시간들을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이 막혀 한참을 써지지가 않았다. 그 시간이 나에게 있어 진정한 독립이 아니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수많은 시간들이 있었다. 다른 지역으로 고등학교에 간 탓에 기나긴 통학시간에 지쳐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부터 친구와 함께 하숙살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고3에는 기숙사를 들어가 1년을 살았다. 그렇지만 이 시간들은 독립이라 할 수 없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학교에 붙들려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쓰러져 잠들기만 했던 이 시간들은 독립이라기보다 시골 학생의 도시 유학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먼 도시로 가서 혼자 방을 구해 살던 내 대학시절. 내 마음 어느 한구석에서 이것이 바로 내 첫 독립생활이지 않냐고 물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학창 시절 엄격했던 부모님.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중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친구 여럿이 모여 한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허락을 받으려고 전화하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전화 너머 엄마의 목소리는 그닥 달갑지 않아서 마음 편하게 놀지 못하고 혼자서 안절부절 했던 순간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어서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생각도 못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수능을 마치고 타지역으로 대학 진학, 내 첫 독립의 시간이 왔다. 책상과 침대 자리를 제외하면 성인 2명이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비좁은 고시원 방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 이상 통금시간에 신경 써도 되지 않는 성인, 스무 살. 마음껏 이 자유를 즐겼다. 친구들과 놀다가 새벽 늦은 시간에 들어가도 아무도 나를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화로 집에 언제 들어오냐 재촉하는 이가 없으니 마음이 불편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이 시절의 내가 진짜 독립을 했느냐 묻는다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친구들과 즐거웠던 시간도 한때였다. 혼자만 있는 방이 외로웠다. 조용하고 캄캄한 밤, 혼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시간들을 견뎌내기가 어려웠다. 될 수 있으면 집에 늦게 들어가고 싶어서 최대한 밖에서 맴돌았다. 집이 가까운 탓에 주말마다 내려갔고, 일요일 저녁에는 엄마가 챙겨주는 반찬거리들을 잔뜩 가지고 올라왔다. 학교 다니는 시간 동안 내가 했던 것은 고작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는 것뿐이었다. 물론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생활했으니 경제적으로도 독립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광양과 광주. 물리적인 거리만 멀어졌을 뿐, 나는 여전히 독립하지 못한 20대의 어린아이였다. 그저, 자유를 조금 더 누릴 수 있게 되었을 뿐.

그 이후에도 영어 공부를 하러 평택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서울에 테솔(TESOL)을 공부하러 다니면서 안산 이모집에서도 몇 달 생활했었다. 대학원 때문에 낯선 포항 땅에 가서 2년을 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어느 때에도 내가 독립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잠시 영어강사 생활을 하며 돈을 벌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진정한 독립이란 무엇일까? 사전은 독립을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않는 아니하는 상태로 되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예속은 차치하고서라도 우리가 누군가를 완전히 의존하지 않으며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고작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며 통금시간을 없이 자유롭게 살았다는 것만으로 그것을 내 독립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조금이나마 내 힘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던 순간은 첫아이를 낳고 혼자 고군분투했던 그 시간이다. 친정과 3시간 떨어진 거리에 엄마도 크게 아프던 때라 애초에 도움을 받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도우미 이모님이 가시고 나서는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는 아이와 나, 오롯이 둘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였지만, 이 아이의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있던 그때. 왜 우는지 이유를 알지 못해 허둥지둥할 때도, 갑자기 분수토를 해서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거릴 때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이 아이를 책임져야 했다. 아직 혼자서 제대로 걷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이 아이 덕분에 둘이서 같이 발에 힘주어 서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비록 엉망일지라도 이 세상에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내딛는 법을 배웠다.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먹이고 입히며, 또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하나하나 선택하고, 또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도 내 몫이었다. 이렇게 엄마의 이름으로 나도 또 하나의 독립된 어른이 되었다.


안다, 아직은 엉망이라는 것을. 때로는 내 선택에 따르는 책임이 너무 버거워 비틀거릴 때도 있다. 몰려오는 두려움에 숨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내 옆의 아이들이 있는 동안은 흔들릴망정, 아주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독립된 어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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