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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Aug 18. 2021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다

<THE COUCH POTATO>를 읽고

여기, 감자 하나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카우치 포테이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카우치 위에서 보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죠.

카우치 포테이토는 이 집 밖, 아니 카우치 밖으로 나설 일이 잘 없습니다. 

여기에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TV, 음악, 게임, 네일 심지어는 자동으로 간식을 공급해주는 기계까지.

먹고, 자고, 노는 모든 것이 여기에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맞은편 벽에 꽉 채워진 스크린.

좋아하는 티비쇼를 보고 게임을 합니다.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친구들과 영상 통화도 가능하지요.

직접 만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낼 수 있어요.

모든 것이 내 맘대로 컨트롤되는 삶,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주문한 비디오카메라를 연결하는 도중 정전이 일어납니다. 

주변이 온통 까맣고, 아무것도 볼 수가 없죠.

카우치 포테이토는 어쩔 수 없이 쳐두었던 커튼을 열게 되어요.

창 밖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정말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햇살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환하네요.

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카우치 포테이토는 밖으로 나가기로 해요.

상쾌한 공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나무에 기대앉아 바라보는 아름다운 석양.

스크린으로 이미 봤던 것들이지만 내 눈에 직접 담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겠죠...?

정전이 된 것은 이미 복구되었지만 카우치 포테이토는 

더 이상 카우치에만 머물지 않기로 해요.

더 크고 아름다운 세상이 밖에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아름다운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어 졌거든요.

코로나 시국에 어쩔 수 없이 집에서만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우리 아이들이 생각나네요.

세상의 기술이 점점 발달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일을 하고,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어떻게 보면 훨씬 더 편리한 세상이 된 것 같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이

우리네 인생에 얼마나 큰 의미이고 기쁨인지,

그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 지금에서야 더 절실히 깨닫게 되네요.

그리고 카우치 포테이토가 세상에 직접 나가기 전에는 몰랐던 것처럼,

보이지 않고, 필요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아는 것만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우치 포테이토 집의 정전처럼 우연한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보여주고 이끌어줄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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