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마지막 날, 내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
아이들이 오랜만에 등원을 했다. 지난 7월 14일 이후로 처음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읽다 만 책들이 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얼마 만에 가져보는 이 시간의 고요함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두 달도 넘는 시간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마음껏 이 자유함의 축제를 누리고 싶은데 내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안하고 불편하다. 코로나때문이겠지. 작년에 찾아온 코로나가 나와 내 삶,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을 바꿔놓았다. 아니 비단 우리뿐만은 아니겠지. 이전까지 찾아왔던 바이러스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조심하고,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 언젠간 종식될 거라는 희망도 끝났다. 이제 사람들은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이야기하며 하나둘씩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위험을 감수한 채로.
그런데 나는, 안정지향적인 사람이라 아직 일상을 되찾지 못했다. 늘 그래 왔다. 애초에 위험한 일에는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꼭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위험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이들에 관한 것이라면, 위험이라는 건 더더욱 안될 말이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출근하는 남편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등원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어린이집이라면 내가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른들도 오래 쓰면 힘든 KF94 마스크를 하루 온종일 쓰고 지내야만 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아무리 방역수칙을 잘 지킨다고 해도, 식사와 양치질 시간, 낮잠 시간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도 가정보육을 연장하는데 힘을 실어주었다. 지난여름, 지방이라 상대적으로 확진자 수가 적었던 이곳도 하나 둘 뚫려가기 시작했다. 중학교와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어린이집에서조차도 확진자가 속출했다. 그 작은 아이들이 엄마 손도 잡지 못하고 차례대로 줄을 서서 그 검사 과정을 견디고 있는 사진을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아이들을 지켜내기가 점점 힘든 세상.. 이 되어버렸다.
알고 있다. 평생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오롯이 혼자서 견뎌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아이의 성장을 돕는다는 것을. 그렇게 아이는 엄마의 품을 떠나 점점 자라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을. 아이가 넘어졌을 때, 호들갑스럽게 달려가 일으켜주기보다는 그 옆에서 함께 하면서 아이가 혼자 힘으로 일어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말이다. 그렇게 배웠고, 배운 대로 실천하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는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그런 쿨한 엄마인 척 조차도 하지 못했다. 지킬 수 있을 만큼은 그냥 지키고 싶었다. 코로나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아이들이 발이 땅끝에라도 닿지 않도록 안고서라도 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1년 9개월의 시간을 견뎌왔다.
사실,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다.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 옳다고 믿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그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가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건강과 안녕이 지금 현재 내 최고 목적이다. 지난여름 백신 부작용을 심하게 앓았는데, 아파보니 더 확실해졌다. 내 가족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내 곁에 함께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는 것을. 그런데 이제는 또 선택의 시간이 왔다.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위드 코로나의 시대가 왔고, 코로나 없는 세상은 불가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코로나가 종식된 세상을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의 일상을 찾아가야만 한다는 것이겠지.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이들도 제법 커서, 등원하지 않은 지난 두 달 동안 어린이집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던 어린이집이 이제는 그리운 곳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주인공인 생일파티도 예정되어 있었다. 이제 학교에 입학하면 하지 못할, 어린이집에서의 마지막 생일파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의 인생에서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일상들. 아이에게서 이것들을 언제까지 빼앗아두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확진자 수가 조금 주춤한 때를 틈타 조금 용기를 냈고, 아이들은 그리운 어린이집으로 등원했다.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엄마 옆에 있어줄 것.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좀 크고 나면 공부를 좀 더 잘했으면, 좋은 곳에 취직했으면. 점점 바라는 것이 늘어날 것이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런 것들을 바라게 되는 날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어느 때에라도, 그중에 최고는 건강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도, 취직을 할 수도 없다. 존재하지 않으면 이루어낼 성과조차 없다는 말이다. 내 옆에 존재하는 것이 먼저다. 살아오면서 삶에 이토록 큰 집착을 했던 때가 있었을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삶 이후에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죽음'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아이가 생긴 이후로 달라졌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내 옆에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견디기 힘들다. 그렇다면 나는 또 어떤가? 내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그래서 혹시나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면 아이들은 평생을 엄마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그런 슬픔을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엄마인 나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우리 서로에게 그런 아픔을 남기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자고. 그렇게 오래오래 서로의 옆에 있어주자고. 그 말을 먼저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이 땅에 존재하기를 허락받았다면 그다음으로는, 모든 일에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두려움 때문에 시작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하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나도 넓고, 아름답다고. 두려움이 너희들의 발목을 움켜쥐지 못하도록 일단 한 걸음 내디뎌보았으면 좋겠다. 엄마도 하지 못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들은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했으면 좋겠다. 실패가 두려워 성공할만한 일들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인생길은 아름다운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걷다 보면 돌부리에 차여 넘어지는 날도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넘어질까 무서워 그 자리에만 웅크리고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넘어져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그리고 아파 울어도 괜찮으니까. 엄마는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넘어지면 안 되는 줄 알고 살았지만, 적어도 너희들에게는 괜찮다 말해 줄 엄마가 있으니까. 넘어지면 다시 손바닥 툭툭 털고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주고, 아픈 상처 호호 불어주며 밴드 붙여줄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네가 걷는 일이면, 어떤 길이든 응원해줄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했으면 좋겠다.
네가 살아갈 세상이 결코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엄마가 살아왔던 시대보다 더 험난하게 보이지만 말이다. 너에게 다가올 모든 걸 감당할 있는 힘을, 넌 이미 가지고 있다고 엄마는 믿어. 앞으로 살아갈 네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도록 어른인 엄마가 좀 더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