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장메이트 Sara Nov 25. 2021

이제서야 내 이름을 찾았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대학을 졸업하고도 집에서 엄마, 아빠와 같이 살며 고향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원에 입학했을 즈음이었나 보다. 평소에도 그리 건강하지 않으셨던 엄마가 정말 심각하게 앓으셨던 것이. 불행은 항상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아빠가 운동 삼아 타던 자전거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다리를 다치시고 엄마는 서울에 있는 병원 여기저기를 다녀봐도 원인조차 찾을 수 없는 그 어떤 무언가 때문에 늘 아프셨다. 제대로 된 방학도 없이 2년 동안 치열하게 공부했던 때였기에 멀리서 소식을 듣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내가 달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때. 졸업 후에 외국으로 나가 일하려던 마음이 자연스레 사그라든 것도 그때였다. 늘 강하게만 보이던 부모님이, 나의 굳건한 버팀목이자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되었던 부모님이 더 이상 내 옆에 없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경험이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바라는 내 인생은 무슨 모습일까?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곳에는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건강하기 위해서 노력은 딱히 하지 않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에 대해서 전전긍긍하게 된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내 옆에서, 오래오래. 아이들이 생기면서 그 바람은 더 강렬해지고 확신이 되었다. 아프지 않는 것.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의 건강이 내 행복이 되었다. 그 어떤 좋은 것들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있지 않는다면 함께 누릴 수 없는 것이니까. 행복의 전제는 건강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행복을 추구하는 일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평안한 모습으로 함께해 주는 것,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소박하지만, 절대 잃고 싶지 않은 행복이다. 




둘째로, 요즘 나의 소소한 행복은 되찾은 나의 이름이다. 여느 뻔한 레퍼토리처럼 결혼하고 육아에만 힘썼더니 내 이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누구누구의 엄마만 남았더랬다. 아직도 내 손길이 필요한 나이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키워놓고 나니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찾아온 여유, 딱 그만큼의 울적함도 동반되었다. 서른해를 살아내며 지켜오던 내 인생이 고작 몇 년 만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 슬펐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멋지게 자기의 커리어를 꾸준히 쌓아왔던 사람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다시 돌아가도 그 선택을 할 것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부러움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인스타에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을 참여하고, 그러면서 나만의 스토리도 만들어나갔다. 영어그림책 읽는 엄마. 아직도 '엄마'라는 꼬리표가 붙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또 나인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영어그림책 읽는 엄마로서 행복하니까 말이다.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일을 기획하고 성취해 나가는 것이 요즘 내 기쁨이다. 내 이름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그것이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누구나 다른 행복의 정의, 그리고 행복 찾기의 방법. 그게 어떤 모습, 어떤 형태이든 간에 스스로만 만족하면 될 일이다. 어느 누구의 행복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행복이니까. 그리고 찾아내는 그 여정 동안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은 완성된 모습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걸어가는 그 길과 시간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모두, 내내 행복하소서.

작가의 이전글 당신은 지금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