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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Nov 17. 2022

수능이라는 인생의 한 페이지를
채우고 나올 아이들에게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오늘이 수능이라고 한다. 학원업계를 떠난 지 오래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보니 이제 수능은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주변에 수험생이 잘 없는 것도 이유겠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한 뒤에 함께 성경 1독을 하는 멤버들에게 굿모닝 인사를 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잠시 함께 기도하기를 부탁했는데, 마침 오늘이 목요일의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라 그 마음을 좀 더 풀어써보려고 한다.





무려 18년 전 오늘, 떨리는 마음에 화장실 수십 번을 들락거리던 밤을 지나 수능을 보기 위해 시험장으로 향했다. 이제까지의 모든 노력이 오늘 하루에 달렸다는 생각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동시에 오늘만 지나면 자유라는 해방감이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그렇게 1교시, 2교시. 긴장감에 밥알이 목에 걸리는 것 같은 점심시간을 지나 3교시. 2번은 다시 들을 수 없는 영어듣기평가. 정답을 확신할 수 없어 이때부터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마음은, 문제를 풀면서 정신을 놓아버렸다.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떻게 그 나머지 시간들을 견뎠는지 모르겠다. 



그날 밤, 가채점을 하면서 든 생각은 '난 이제 망했다'였다. 내 방 한구석에 틀어박혀 얼마나 울었던지.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엄청난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평소보다 낮게 나온 점수로는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없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내 꿈은, 그래 끝! 여기서 끝이었다. 괜한 자존심과 오기를 부려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법대에 진학했다. 그동안 해왔던 것이 아까우니 재수를 해보라는 부모님의 권유도 거절했다. 3년, 아니 평생의 노력이 단 하루로 결정되는 이 현실과 시스템을 견뎌낼 수 없었다. 다시 도전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원하지 않았던 대학으로. 



그래서, 정말 끝이었을까...? 내 인생은 망했던 걸까? 망한 인생을 18년 동안 붙잡고 살고 있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망하지 않았다. 강산이 두 번은 변했을 시간을 살고 나니 알겠다. 수능이 인생에서 높고 험한 산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많고 많은 우리 인생 페이지 중에, 겨우 한 페이지였을 뿐이다. 수능 점수가 당연히, 현재의 삶에, 갈 수 있는 대학의 수에 큰 영향을 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수능을 망쳤다고 해서, 평소보다 점수가 낮게 나왔다고 해서 내 인생도 끝난 것은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매년 수능이 끝난 저녁에 들려오는 좋지 않은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내 자식들은 아니지만 엄마 된 마음으로 더 안타깝고 눈물이 난다. 그 아이들의 잘못된 선택에 가슴이 시리다. 18년 전의 나도, 수능이 전부인 줄 알았지만. 그래서 시작이 조금 더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행복하게. 좀 더 살아보면 알겠지만, 수능 말고도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게 될 산은 참 많다. 우리 인생의 기회가 단 한 번뿐인 것은 아니라는 거다. 단 한 번의 실패가 우리를, 우리 인생을 규정지을 수 없다.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은 꽃 같은 아이들이 자기 목숨을 쉬이 내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저, 네 인생이라는 책에서 단 하나의 페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네 앞에 펼쳐질 수많은 날들 동안 더 많이 행복하고, 더 많이 도전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네 꿈은 (네가 원하는 형태와 방식이 아니더라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이 시시하고 심심한 위로라도 닿기를. 오늘 밤은 그냥, 그동안 수고한 스스로를 따스한 마음으로 보듬고 잘했다 토닥이며 마무리하기를. 그리고 내일 아침,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기를. 다가올 네 20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가르치고 있지 않지만 '사라샘'이라고 불리며 소박한 꿈을 실현한, 서른일곱의 인생 선배이자 엄마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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