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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 Sara Nov 24. 2022

조용히 좀 해 줄래?

소리에 예민한 부모를 둔 죄로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몇십 년을 살았어도 몰랐던 내 안의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 너, 거기 있었니...? 나한테 있어서는 '소리'가 바로 그렇다. 나는 음악을 딱히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그때 유행하는 노래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다 다음 최애곡으로 넘어가는 그냥, 딱 그 정도.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누군가는 목소리만 듣고도 딱, 이건 가수 누구네! 맞출 수 있고, 이 가수는 음역대가 넓은데 저 가수는 고음엔 약해라고 평을 하기도 한다. 바로 우리 남편처럼.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우와, 어떻게 그런 걸 그렇게 잘 알아?'라고 놀란 목소리로 묻는다. 상상도 못했다는 듯이. 그래서 더더욱 내가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아이를, 아니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알겠다. 나는 너무나도 소리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행복하게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주파수 높은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에 멍해지는 때가 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싸우는 소리, 목청껏 우는소리는 용납하기가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사정이 아니었나 보다. 나보다 훨씬 더 소리에 예민한 남편은 더 힘에 겨워한다. 특히 운전할 때는 더 그렇다. 끝도 없이 메들리로 울려 퍼지는 뽀로로 노래가 반복, 반복, 또 반복되다 보면 운전에 집중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아이들이 싸우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끼리 신나서 대화하는 것도 톤이 조금만 높아져도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물론,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좀 조용히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저녁 먹고 온 가족이 쉬는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놀아달라 하지 않는데도, 저들끼리 노는 소리마저도 힘들 때가 있다. 아랫집 핑계를 대며 조금만 조용히 놀자고 이야기하지만 우리 둘 다 안다. 아랫집보다 우리 부부를 위한 것이라는걸. 




소리에 예민한 엄마, 아빠를 둔 죄로 우리 아이들은 '조금만 조용히 하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고, 가끔은 혼나야 할 것보다 더 많이 혼나기도 한다. 우리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무던했으면 좋았을 것을. 부부 모두가 그러니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미안한 마음을 담아 시골 할머니 집에서 마음껏 놀게 하고,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캠핑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도 숨 쉴 틈은 필요하니까. 그곳에서는 운전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줄 일이 덜하니 우리 마음도 편하다. 고작 1박, 2박 하자고 짐을 챙기고, 텐트를 치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것은 소리에 예민한 부모가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다. 타고나길 소리에 예민하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날카로운 소리에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긴장되고, 사고가 마비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좀 더 편하고 즐거우며, 만족할 만한 환경을 찾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살아보니 알겠다. 부모만 아이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아이들은 소리에 예민한 부모의 민감함을 견디고 있고, 배려해 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배워가고, 맞춰가며, 가족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돼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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