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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Nov 22. 2021

부산행

깜짝 부산행

부산행

집을 나와 산지 3개월 차.

사실 매일매일 집에 내려가고 싶었다.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따뜻하고 아늑한 우리 집이 너무 그리웠다. 그래도 조금만 참자. 조금만 참자 하다가 보니 벌써 11월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주가 지나면 너무 바빠질 것 같아서 이번 주말이 종강 전 내려갈 마지막 기회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한 달만 참자라는 마음으로 내려갈 수 있었던 금, 토에 참고 또 참았다. 그런데 토요일 밤,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엄마랑 매일 통화를 하지만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엄마가 더 보고 싶어 졌었다.  

그렇게 기숙사에서 혼자 훌쩍훌쩍거리고 있다가 다음 날 아침 출발인 부산행 기차표를 예매해버렸다. 그 순간조차도 '나 내려가도 괜찮으려나.. 공부는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이 있었지만 엄마를 오랜만에 본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행복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내려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학교 기숙사에서 역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을 때 가능한 기차 시간이 없었다. 그 사실 조차 너무 슬펐다. 여하튼 그렇게 나는 추석 후 두 달 만에 따뜻한 우리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렇게 ktx를 탔는데 뭔가 쾌적해지고 넓어진 것 같아서 혼자 '오~ ktx가 리뉴얼을 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 분명 역방향을 예매했는데 갑자기 순방향으로 출발해서 순간 기차를 잘못 탄 것인가 싶어서 무척 당황했다. 다시 표를 찾아보니 다행히 기차는 잘 탔는데 칸을 잘못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는 vip석인 듯했다. 바로 일어나서 5칸에서 저 멀리 나의 진짜 자리인 14칸으로 기차랑 같이 열심히 갔다.

 여하튼 나의 자리를 제대로 찾고 앉아보니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이른 아침의 한강은 또 처음이라 꼭 남기고 싶었기에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서 동영상으로 남겼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은 아침의 한강도 무척이나 예쁘고 좋다. 다시 돌아올 때도 찍어야지 했다.


 그렇게 2시간 30분을 달리고 또 부산역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약 30분을 달린 후.. (물론 기차랑 지하철이 아주 열심히 달려주었지만) 드디어 우리 집으로 왔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우리 엄마. 너무너무 좋았다. 우리 엄마는 여전히 무척 예뻤다. 엄마한테 포옥 안기고 싶었는데 그러면 바로 눈물이 왈칵 터질 것 같아 그러지는 못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나의 추억이 가득한 소중한 넓고 따뜻하고 내 방. 들어오자마자 무척이나 행복했다. 나 온다고 엄마가 침대에 전기장판도 깔아놓고 더 깨끗하게 해 놓으신 것 같았다. 고맙고 미안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 그리웠던 엄마의 따뜻한 밥과 버섯 미역국. 그리고 두부조림, 갈치, 가지 반찬 그리고 할머니표 깍두기

 엄마는 내가 온다고 아침부터 급하게 마트에서 장을 한가득 봐 오셔서 맛있는 것들을 하고 계셨다. 집에 우리 엄마의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너무 좋았다. 우리 엄마는 정말 요리를 잘하신다. 또 나와 언니가 어릴 때부터 매일매일 정성껏 맛있고 건강한 것들을 해주셨다. 그때는 그게 이렇게나 감사한 것이고 소중한 것이었는지는 몰랐다.

 사실 4년 전, 대학에 진학하고 다이어트를 한 후 살찌는 것을 싫어하고 항상 살에 민감하게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 우리 엄마 밥만큼은 내 배에 가득가득 소중히 저장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의 두 그릇을 먹었다. 너무 배불렀는데도 그냥 더 더 먹고 싶었다. 엄마의 손 맛이 너무 그리웠댜.


 내가 엄마 보고 오늘 하루만 3일처럼 살자고 했다. 사실 새벽을 새어서라도 엄마랑 더 많은 시간을 같이 있고 싶었다.

 아무튼 밥을 잘 먹었으니 이제 디저트 시간이다. 엄마랑 나는 한 때 나의 방앗간이었던 '꽃피는 4월 밀익는 5월'이라는 빵집에 가기로 했다. 이곳은 내가 비건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 고마운 곳인 동시에 나에게 맛있는 추억을 한가득 만들어 준 소중한 곳이다. 물론 우리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도 참 많다. 엄마도 나랑 먹는 이곳의 빵이 그리웠던 것 같다.

이날은 이곳의 당근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런데 딱 하나 남아있었던 것이 아닌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안 온 사이에 신메뉴가 많이 생겼었다. 비건 앙버터 모카번이라니! 매번 올 때마다 생각하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빵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시는 것 같다. 무튼 이 모카번 정말 정말 맛있었다. 적당한 당도의 팥 앙금과 느끼하지 않은 비건 버터, 그리고 바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모카번의 조합이 엄청났다.

 배가 불렀는데 엄마와 오랜만에 커피와 디저트 타임을 가지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거의 다 먹었었다. 맛있어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엄마와의 디저트 타임이 너무나 좋았다.

 집에 온 지 몇 시간 만에 에너지를 100% 충전한 느낌이었다.

 배불리 먹고 엄마와 산책을 가기로 했다. 엄마와의 시장 탐방은 내가 정말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부산에 살 때에도 비가 오고 천둥이 치는 날에도 나는 엄마 팔짱을 끼고 우리 집 앞 시장을 산책하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엄마 손을 잡고 걸으니 정말 행복하고 좋았다. 계속 엄마의 철없는 어린 딸램이고 싶다.

 

 엄마는 다음 날 다시 돌아가는 나를 위해 이 날 밤까지 음식을 하셨다. 하루 만에 미역국, 콩나물국 그리고 여러 가지 반찬들을 한가득 만드셨다. 우리 엄마는 언니야랑 나를 위해서는 자신이 힘들고 지칠 때도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분이다. 그런데 어릴 때는(사실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었지만 머릿속은 무척 어린 철없는 나이다.) 엄마의 그런 헌신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때는 엄마의 속마음을 살펴본 적도 없고 항상 아무 생각 없이 놀고 먹기 바빴던 나였다. 하지만 조금 성숙해지고 보니 너무 미안하고 또 너무 고마웠다. 내가 엄마가 된다고 해도 우리 엄마처럼 못할 것 같다. 우리 엄마 이제는 고생 안 시켜야지 수백 번 마음먹었었는데 엄마랑 같이 있으면 나는 어리광이 많아지는 어린 아니, 정확히는 어리고픈 딸인 것 같다.

 바로 다음 날, 나는 다시 학교에 가기 위해 서울로 가야했다. 정말 하루만, 아니 몇 시간 만이라도 더 있고 싶었다. 떠나기 전 엄마와의 마지막 점심. 너무 너무 소중했다. 5끼는 먹고 싶었다. 갓 지은 따뜻한 밥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이 너무나 소중했다. 배 불렀지만 또 두그릇을 먹었다.

 그리고 이제는 기차를 타러 가야한다. 엄마가 기차까지 배웅을 해주셨다. 이렇게 기차에서 엄마와 '빠이빠이' 하는 것이 이번이 3번째인데 사실 엄마와 인사하고 나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도 한참을 계속 울었다. 바로 엄마가 보고싶었다.  

 마음을 조금 추스리고 엄마에게고맙다고, 잘 들어가라고 카톡을 보냈는데 엄마의 답장을 보고 눈물이 다시 벌컥 나왔다. '우리 딸램,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셩~♡' 엄마가 벌써 너무 보고 싶었다. 기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엄마. 나는 엄마의 딸이라서 하루하루가 너무 감사해. 엄마의 딸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야. 엄마. 많이 미안하고 또 고맙고 무척이나 사랑해. 나 정말 열심히 해서 성공해서 우리 엄마 이제는 고생하지 않고 행복하게 해 줄 거야.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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