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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Jul 20. 2022

리틀 포레스트

 영화를 보는 것에 큰 흥미가 없어 자주 보지는 않지만 이날 밤은 혼자 방에서 조용히 영화 한 편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리틀 포레스트'. 스토리는 몰랐지만 요리가 주제인 듯해 보여서 이전부터 궁금했었다.

 

 참 신기했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지만 주인공 혜원(김태리)은 나와 비슷하다면 비슷한 추억을 가졌고 그녀의 현재 상황과 심리상태 또한 지금의 나의 것들과 닮아있었다. 혜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골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았다. 요리를 잘하시는 엄마 덕분에 자연 속의 재료로 엄마의 정성이 듬뿍 담긴 요리를 먹으며, 또 그렇게 사랑을 먹으며 자랐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그랬듯, 혜원도 고향을 벗어나 상경하는 것을 꿈꿨고 상경에 성공했다. 서울 생활은 생각하는 것처럼 이상적이고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시험, 인간관계 그리고 매 끼니 챙겨 먹는 것.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영화 주인공 혜원도 나도. 그래서 혜원은 잠시 고향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녀는 엄마가 없는 고향집에서 홀로 요리를 한다. 직접 딴 제철 채소를 사용해서 정성껏 요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말 맛있게 먹는다.

 나는 사실 서울에서 정말 열심히 해 먹는다. 채식 지향의 삶을 시작한 후로 요리에 관심이 많이 생겼고 또 자주 해서 이제 한 끼를 차리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채소가 가득하여 건강하고, 무엇보다 내 입맛에 아주 잘 맞는 밥상을 거의 매일 차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느꼈다. 나는 그저 '다양하고 많은 채소를 먹어야 한다!'에만 집중하여 많은 재료로 최대한 빨리 요리를 끝낸 후 유튜브 영상에 집중하며 그냥 입에 음식을 빠르게 밀어 넣고 있었다. 또 밥을 먹고서 배가 불렀지만 더 이상 못 먹겠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무언가를 계속 빠르게 먹었다. 그래서인지 소화제를 달고 살았고 다 먹으면 배부름과 동시에 엄청난 허무함과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렇게 나는 지쳐버렸다. 식사 시간이 더 이상 행복감을 주지 않았다. 그저 잠깐 유튜브를 보는 시간 같았다. 그리고 가끔은.. 그 시간이 두렵기도 했다.

 나도 혜원처럼 고향이 그리웠다. 서울로, 더 큰 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엄마가 있는 우리 집에서 같이 밥 먹고 웃고 떠들었던 그 순간들이 너무 그리웠다.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버티다가 집에 내려가게 되면 긴장이 풀리고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언제 한번 집에 내려갔을 때 아침에 자고 일어나 내가 지금 부산 집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행복해서 미소가 나왔던 게 기억난다. 그때의 나, 너무 좋았나 보다. 

 영화 속 혜원의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요리를 아주 잘하신다. 온갖 맛깔난 양념을 순식간에 만들어버리고 항상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요리를 해주셨다. 언니야와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아끼지 않으셨다. 오랜만에 맛 본 엄마의 밥. 더더욱 맛있다. 작년 여름에 서울 살이를 시작하고 처음 부산에 내려가서 엄마 밥을 먹었을 때 눈물이 고였다. 이렇게 오랜만에 고향집에 내려갈 때는 엄마 밥을 내 배에 많이 '저장'하고 싶어서 평소보다 많이 먹는다. 그럼에도 소화는 잘 되고 기분이 무척 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새송이버서 미역국 그리고 엄마표 떡볶이와 다양한 버섯이 가득한 잡채.
버섯 가득 부추무침과 도토리묵. 그리고 너무 맛있어서 새삼 진지하게 먹은 김치비지찌개.


 



영화를 보고 난 후 난 엄마에게 무척 고마웠다. 우선, 엄마 음식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어서, 그 추억으로 지금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서. 지금 이 순간은 조금 뜬금없기는 하지만 시금치 계란말이, 부추 계란말이 그리고 매생이 계란말이 등 초록빛의 계란말이 등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때 토요일에는 도시락을 싸갔어야 했는데 그때 엄마가 자주 싸준 반찬 중 하나이다. 사실 당시에 나는 인스턴트 음식에 빠져있었기에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또 초록빛의 계란말이가 나를 반기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엄마의 사랑이 담긴 반찬이었다. 지금 나는 계란을 먹지 않아 시금치 계란말이를 해 먹지는 않을 것이지만 왜인지 지금은 그게 자꾸 떠오른다. 간과하고 있던 이 소중한 추억 하나하나를 다시 되짚어 볼 수 있게 해 주어서 이 영화에게도 고맙다. 

 또 나에게도 주인공처럼 '요리' 그리고 '음식'이 주는 따뜻함과 행복을 알게 해 주어서 엄마에게 고마웠다. 나는 엄마에게서 요리를 많이 배웠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재료로 여러 가지 음식을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요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또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났을 때, 나는 엄마와 함께 요리하는 기쁨을 배웠다. 그렇게 조금씩 어깨너머로 나는 요리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본 후, 나는 요즘 방황하는 나 스스로에게 요리의 행복을 선물하기로 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재료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루며 요리의 각 과정에 집중하며 얻는 그 기쁨. 천천히 정성스럽게 내가 먹을 것을 만드는 그 기쁨. 오랜만에 느낀 것 같다. 이 감정을 내 마음속, 머릿속에 심어준 우리 엄마에게, 그리고 잠자고 있던 이것들을 다시 꺼내 준 영화에게도 참으로 고맙다. 

천천히 만들고 천천히 먹은 내가 차린 요즘의 나의 밥상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게 고마운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앞의 얘기와 조금 다른 얘기이기는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너무 큰 의미여서 꼭 써야겠다. 나의 현재 식습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앞에서 잠깐 말했듯 며칠 전까지 나의 식사시간은 불안 그 자체였다. 요리할 때도, 먹을 때도 그리고 먹고 난 후도. 이런 나 스스로를 바라보며 힘들고 슬퍼했지만 개선을 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불안에 떨고만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나는 서서히 달라지는 중이다. 요리도 식사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려고 노력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요즘 '천천히'라는 이 부사 하나가 나에게 엄청난 안정과 행복을 주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행복한 밥시간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밥을 다 먹으면 행복하다. 


 참으로 고마운 영화다. 잠자고 있던 나의 행복한 기억을 꺼내 나의 마음을 치유해주었다. 나를 변화시켜주었다. 2022년 여름날 '리틀 포레스트'는 정말 잊지 못할 영화일 것 같다. 






그림 출처: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6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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