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의 등장

어느 날, 도심 하늘 한복판에 UFO가 떴다.

by 진서윤

어느 날 하늘에 UFO가 떴다.

정확히 어디에 떠있는지 정의할 수 없었다.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정의할 수 없었다. 원반 모양이면서, 캡슐모양이면서, 밝으면서, 큰 어둠이면서. 그저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 이 동시에 관측할 수 있었다. 모두가 한 눈에, 외계인의 비행접시라는 것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UFO가 관측되자마자, 정부는 모두 지하로 대피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것이 각 국가가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다. 까딱해서 외계인에게 누군가 잡혀간다면 그 당사자만 위험한 것이 아니니까. 혹여나 인간에 대한 정보가 외계인들에게 넘어간다면 인류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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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탁은 억울했다. 이제 막 서른, 수년간의 취준 끝에 겨우 닿은 중소기업에 입사해서 이제서야 부모님 용돈 30만원 쥐여드리는 삶이었다. 그런데 취업한지 우 일 년도 되지 않은 지금, 이 회사의 지하실에 일주일 째 갇혀있다. 무엇보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제일 걱정이었다. 본가 근처에 지하가 있을 만큼 큰 건물이 있었던가. 아직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긴 했지만, 언제 UFO가 부모님을 공격할지는 알 수 없는 터였다.


은탁은 자기를 등지고 자고있는, 직장 선배 재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40대 중반, 3년 전에 이혼을 하고 열여섯짜리 딸을 홀로 키우고있는 사람.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은탁은 부모님을 일년에 한 두번 찾아뵐랑 말랑했던 자신보다 평소 딸의 말이라면 깜빡 죽던 재준이 더 심란할 것이라 어림짐작 하고있었다.


UFO가 뜬 이후로, 재준과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직장동료들이 지하실에 남아있던 비품으로 식사를 할 때도, 다같이 대책에 대한 말다툼인지 모를 싸움을 할 때도, 재준은 됐 어요- 한마디만 뱉고 절대 끼는 법이 없었다. 평소 살갑게 직장동료들을 대하던 재준은 그 날 이후로 입을 꾹 닫고 벽을 보고 누워 폰만 보거나, 자거나 했다. 은탁은 처음에는 눈 치껏 말을 아껴왔지만, 이제는 저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재준에게 다가갔다.


- 선배, 식사하세요.


- 됐어.


그 짧은 한마디에, 은탁은 괜히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니, 자기만 겪고 있는 일인줄 아나? 나도 부모님이 걱정되는 맘 꾹 참고 있는데, 다들 참고있는건데 자기 혼자 저렇게 힘든 티 내면 어쩌자는건지. 사실은 울컥한 맘이 더 컸다. 첫 직장에서 만난 재준은 선배로서 참 좋은 사람이었다. 힘들 때마다 박카스 한 병 슬쩍 쥐여주던 따뜻한 사람. 부모님 걱정되 는 애타는 맘을 여느 때처럼 재준에게 터놓고 어리광피우고 싶었는데, 든든한 버팀복이 맥없이 무너진 모습을 은탁은 보고싶지 않았다. 그런 복잡한 마음에 참아왔던 말들을 왈칵 쏟아냈다.


- 아니, 밥도 안먹을거에요? 어떻게 사람이 일주일동안 물만 먹고 살어요. 솜이 잘 있다잖아요, 내가 계속 카톡하는거 봤는데. 그럼 됐잖아요. 울 부모님은 휴대전화 잘 다룰 줄도 몰라서 연락도 겨우 닿고, 지하실도 없어서 대피도 못했는데. 왜 선배 혼자만 그래요, 내앞에서? 나도 더이상 말 안해요, 빨리 밥 드세요.


-…안 먹는대두 네가 내 몫까지 다 먹어


은탁은 답답한 마음에, 재준의 몸이 향하고 있는 벽을 발로 쾅 찬 후, 재준 몫의 음식을 들고 뒤돌아갔다. 말은 걸지 않아도 지금껏 먹지도 않는 밥 날라주고 물 가져다준게 자신 이었다. 그런데 걱정되서 한 말 한마디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태도가 기분나빴다. 은탁은 이제 진짜 재준을 신경써주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렇다고 다른 동료들과는 그리 친분이 있지도 않았기에, 그저 구석에 앉아 짜증이 묻어나는 숟가락질로 2인분의 햇반과 참치캔을 퍽퍽 퍼먹을 뿐이었다


그런데,


빛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제대로된 참치캔의 색을 봤다. 형광등의 깜빡이는 빛이 아니라, 햇살과 같이 넓고 맑은 빛이 들어왔다. 땅 속에 있는, 지하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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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UFO를 모두가 볼 수 있었듯, 그 빛도 세계의 모든 이에게 쬐여졌다. 재준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 빛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이 지하실이라는 사실은 그것을 쳐다보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UFO의 문이 열려있었다. 그곳에서 햇살과 같은 눈부신 빛이 나오고 있었고, 외계인이 그 아래쪽에 둥둥 떠있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상상 속의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 력적이었다. 인간과는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들의 미모에 흘려 지상으로 기어올라오기 도 했고, 사진을 찍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기도 서슴치 않았다.


가장 앞에 서있던 외계인이 운을 뗐다.


- 반가워요. 아직 이곳은, 다른 문명과 접촉한 적이 없나보군요. 아무런 공격도 가하지 않았는데 땅 속으로 다들 숨어버리셔서, 하하. 많이 놀라신 것 같아서, 적응할 시간을 드리 려고, 하하. 일주일 정도 내려오지 않고 좀 침착해지실 때까지 기다려봤어요, 하하.


그 누구도 외계인에게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웃으면서 말을 하고 있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종족이었지만, 그럼에도 처음 맞닥뜨리는 외계 문명에게 쉽게 말을 건낼 수 있는 사람 이 누가 있을까. 다시 한 번 겁에 질린 사람들, 그럼에도 그들을 보며 황홀함에 정신못차리는 사람들의 앞에서 외계인은 말을 이어나갔다.


- 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여러분이 걱정하는 그런 짓은 안할거니까. 오히려 반가운 제안을 하러왔는데, 이렇게 얼어계시니, 하하. 인간 문명이 많이 발전한 줄 알고 계시죠? 천 만에요, 이미 우리는 광속을 뛰어넘을 수 있고, 다른 여러 문명과 더 큰 사회도 이루고 있는걸요, 하하. 그 사회에 속한 문명들에 비하면, 인간은 아직 멀었죠, 하하. 그래서 우리가 도움을 좀 주고자해요.


그러자 재준이 소리쳤다.


- 뭐, 도움? 늬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하나뿐인 딸 생사가 당장 어떻게 될까봐 걱정하는 홀애비 마음을 알기는 하시는가? 매일같이 죽을 것 같았다고. 여기서 더 발전한 기술, 나 는 필요없어. 이대로도 좋다구. 그러니까 썩 꺼져.


혹시나 재준을 외계인이 해하지는 않을까, 데려가버리지 않을까 사람들은 걱정했지만, 외계인은 빙긋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 아, 그러시다면 사과드립니다. 그래, 발전한 외계 문명의 선물을 받는 것 보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신다니... 하하, 참 현명한 인간이군요. 그럼, 제안을 거절하시겠다는 말로 이해 하면 될까요?


사람들은 재준이 소리쳤을 때보다 더 큰 두려움에 빠졌다. 어쩌면 그것은 공포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은탁은 생각했다. 외계 문명의 제안을 거절한다고? 그게 어떤 제안일 줄 알고, 물론 위험할 수는 있겠지만, 엄청난 기술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몇백, 몇천년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기술일지도 몰라. 다신 없는 기회일거라구. 그런데, 고작 딸 하나 때 문에 인류 문명의 이익을 저버리겠다고?


- 아니, 잠시만요. 이 형이 흥분해서 이러는겁니다.... 어떤 도움을 주시겠다는건지....?


- 하하, 현명하신 분 옆에 더 현명하신 친구분이 계셔 다행입니다. 그러면 우리에 대한 소개를 잠깐 하죠. 우리는 10만광년 정도 떨어진 은하에서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비할 수 없 을 정도로, 더 높은 문명이 발달한 곳이지요. 우주에는 그런 문명이 참 많습니다. 그들끼리는 협력을 하기도, 경쟁을 하기도 하구요. 각 문명은 한가지씩의 주력 상품을 외부 문명 에 수출합니다. 당연히 저희 문명에도 주요 사업이 있겠죠. 우린 목걸이를 판매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그 목걸이를 판매하려고 온 것입니다.


- 목걸이...? 무슨 엄청난 보물이라던가 기술력이 아니라, 고작 악세서리 하나 팔겠다고 10만광년 떨어진 이 작은 행성에 왔단겁니까?


- 아, 고작 악세서리는 아닙니다! 엄청난 능력을 부여하는 목걸이지요. 뭐 한두명에게 팔려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고... 그러니까, 우리는 인간 종 전체와 계약을 하길 원합니다. 그 정도 스케일은 되어야 우리에게도 이득이 있지요, 하하. 목걸이를 차면, 각자 특정한 한 분야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노래가 되었든, 경제적인 능력이 되었 든... 그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가 될 수 있을만한 능력을 지닐 수 있게 되지요. 꼭 능력이 아니더라도, 한가지 부분에서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겠습니다. 기간은 10년 입니다. 딱, 10년 동안 이 목걸이를 인간 모두에게 부여하겠습니다.


- 그럼 우리에게는 뭘 원합니까? 목걸이를 받는 대신, 우리가 무엇을 지불해야 합니까?


- 대가는 따로 필요없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뭐... 일종의 프로모션 기간이랄까요? 하하.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10년 뒤에는 목걸이에 대한 그 어떤 말도 더 하지 않는 겁니다. 그거면 됩니다. 10년이 지나면, 계약을 더 연장할수도, 어떤 설명을 바라는 것도.... 모두 금지입니다. 부작용은 없습니다, 약속합니다. 어때, 계약을 하시겠습니까?


외계인은 망설이는 인간들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윽고 다시 운을 떼었다.


- 기한은 12시간 뒤, 자정까지입니다. 자정이 되면 여러분 앞에 버튼 두 개를 두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찬성/반대를 눌러주세요. 다수결로 결정하도록 하지요, 하하.


외계인은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고, 좀 전부터 띄고있던 미소를 유지한 채 UFO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