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결과

어떤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by 진서윤

*처음부터 읽는 것이 더 재미있는 단편소설입니다. 브런치북에 들어가셔서 1화부터 보고 오시길 추천드립니다.*




인류가 출현한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 열띈 토론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반짝였다. 나는 얼굴만 예뻐진다면 소원이 없었는데, 목걸이만 차면 세계 최고가 될 수 도 있는 거잖아, 내 목걸이가 그 목걸이가 아니라면, 내 목걸이랑 예뻐지는 목걸이를 바꾸자하면 되지 뭐. 나는 우주비행사가 되는게 오랜 꿈이었는데, 조건에 맞는 목걸이만 찾으 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거야? 이런 꿈에 젖은 생각을 하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부작용이 없을 거란 말을 어떻게 믿어? 그리고, 아무 대가가 없다고? 분명 그 10년 뒤에 우리에게 인간이든 자원이든 내놓으라고 할거야 . 지구를 정복하려는 속셈이면 어떡해? 하는 의견이 반대파의 주류 의견이었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고, 자정이 다가왔다. 전 인류의 눈앞에 버튼이 두 개씩 생겨났다. 은탁과 재준의 눈앞에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반대 버튼과 푸른 찬성 버튼.


은탁은 망설임없이 푸른 버튼을 눌렀다. 10년 가까이 취준생 생활을 하며, 수도 없이 좌절했던 그였다. 늦둥이로 태어나 늙은 부모 밑에서 자라느라 남들보다 지원을 덜 받으며 공부했다는 열등감이, 사실 그에게는 마음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공부해 나름 지방에서는 알아주는 대학을 입학했다. 그러나 졸업을 한 후 바라본 사회 는 달랐다. 노력으로도 안되는 것이 있었다. 생각보다 출신은, 인맥은, 권력은, 돈은 많은 것을 좌우했다.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없었지만, 이런 자신의 신세가 억울하고 분 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모두에게 목걸이가 하나씩 부여된다고? 은탁은 자신이 최고가 되는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길 바랬다. 그리고, 목걸이 가 그 출발선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버튼을 누른 후, 재준을 슬쩍 돌아봤다. 바로 빨간 버튼을 누를거란 은탁의 예상과는 달리, 재준은 입술을 틱틱 뜯으며 잠시 고민하더니 푸른 버튼을 눌렀다. 은탁은 과거의 어느 날을 떠올렸다. 항상 은탁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하던 재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던 날이었다.


- 내 딸 솜이가 아이돌을 하고싶어 해. 그런데 내가 혼자 애를 키우다보니 돈 벌기도 바빠서 뒷바라지를 못해준다. 이혼을 한 건 난데, 그 책임은 왜 다 솜이가 지고있는지... 나 있 잖아, 은탁아. 나 정말 솜이 꿈 이루어줄 수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재준은 버튼을 누르던 그 순간, 솜이를 떠올렸다. 자기 욕심대로라면, 그냥 빨간 버튼을 누르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솜이랑 안전하게 오손도손 오래 살고 싶었다. 하지만 솜이도 같은 생각일까, 끼 많은 딸이 꿈에 도전해보지도 못하게 된건 다 자신 때문이라 생각했다. 재준은 결심했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아이돌이 될 수 있는 목걸이가 세상에 생기기만 한다면? 그 때는 목숨걸고 그 목걸이를 얻어내 하이의 목에 걸어주리라 다짐했다. 그런 생각에 재준은 조금 불안한 마음을 한 쪽에 제쳐두고, 푸른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은탁은, 그 마음을 과거의 그 날 들은 말을 근거로 어느정도 어림짐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품은 채 각자만의 선택을 했다.


-


다음날 아침, UFO에서 다시 외계인이 내려왔다.


- 자자, 투표가 끝이 났네요. 어제 썩 꺼지라는 말을 듣고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와, 조금 의외의 결과가 나왔네요? 88% 찬성. 좋습니다, 하하. 계약은 무를 수 없다는 점, 알고계실거라 생각합니다. 후회하지 않으실거라 보장합니다. 그럼, 10년 뒤에 뵙죠, 하하.


그렇게 외계인은 할 말만 툭 뱉어버리고 곧장 UFO에 올라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 부분이 은탁은 조금 미심쩍게 느껴졌다. 마치 사기꾼이 거래를 성사하고 무를 수 없도록 빠르게 일을 처리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은탁의 감과 달리, 달라진 것은 없었다. 누군가 실종되지도, 이상한 물체가 남아있지도 않았다. 새로운 바 이러스가 나타나지도, 이상한 전파가 잡히지도 않았다. 그저, 계약대로 각자의 목에 그 외계인들 만큼이나 아름다운 보석이 달린 목걸이가 하나씩 생겼을 뿐이었다.


- 뭐야, 딱히 달라진게 없는데?


그러나 이런 당황도 잠시, 몇몇 사람들에게서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으려고 요리를 하던 초보 요리사 H씨는 자신이 부친 계란후라이에서 천상의 맛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하실 안의 고등학생들에게 심심풀이로 과외를 해주던 교사 K씨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강의가 가장 훌룡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마다 각자의 분야에 서, 정말 최상의 실력을 겸비하게 되었다. 예외적인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효과를 본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직업 분야에서 목걸이의 능력이 발휘되었다. 언론은, 자신의 직업 에서 최고가 되는 목걸이"로 이를 정의했다.


재준의 딸 솜이도 효과를 본 사람 중 하나였다. 지하실에서 나오자마자, 길에서 캐스팅을 당해 바로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하이는 순식간에 대세 아이돌이 되었다. 원래도 끼가 많던 아이였지만, TV속의 하이는 정말 '천상 아이돌' 그 자체였다. 누구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다. 물론 그녀를 질투하며 악플을 다는 사람도 많았지 만, 뭐가 되었든 순식간에 솜이는 유명해졌다.


재준도 마찬가지, 항상 일을 하느라 숨어있던 허리가 순식간에 펴지고 꽤 오랫동안 앓고있던 천식도 멀끔히 나았다. 재준은, 건강 분야의 최고가 되었다. 많은 의사들이 찾아와 그에게 비법을 물었으나, 재준은 머쓱하게 웃으며 목걸이를 흔들어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였다. 은탁이 그랬다. 은탁은 자신이 일하는 건축분야에서 자신이 최고가 되길 나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넓은 백지에 건물 도 면을 그려보기도 하고, 집에 있는 수수깡을 가지고 건물 모형을 만들어보기도 했으나 이전과 변한 것은 없었다. 은탁의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백댄서 일을 하고있던 은탁의 여자친구 정화는 목걸이를 받자마자 연습실 벽의 거울을 향해 댄스를 춰보았으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희망이 애초에 없었을 때 보다 있던 희망이 사라진 것은 훨씬 더 절망적이었다. 두 사람은 빈 방에 마주앉아 짜증이 날 만큼 감당하기 벅찬 허무함을 마주해야 했다.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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