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마음이 옮는 것이 사랑인가, 사랑하기에 고약한 마음이 옮는걸까.
*처음부터 읽는 것이 더 재미있는 단편소설입니다. 브런치북에 들어가셔서 1화부터 보고 오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들의 허망함의 타겟이 된 건, 다름 아닌 솜이와 재준 모녀였다.
- 나 솜이 목걸이 뺏어다 줘. 오빠도 알잖아, 나 몇 년 동안 연습생만 하다 소속사가 사기치는 바람에 백댄서로 전향한거.
- 정화야, 아무리 그래도...
- 쟤는 아직 어려. 기회가 많다구. 그치만 난 아냐. 오빠, 나 벌써 20대 후반이야. 정말 이거 아니면 나 기회가 없어. 오빠 회사에 재준씨 딸내미라며. 어떻게 잘 해보면 내 목걸이랑 바꿔치기 할 수 있잖아. 응?
은탁은 고민에 빠졌다. 재준의 집에는 몇 번 들락날락한 적이 있었기에 목걸이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태껏 고생한 재준의 사정을 알았기에, 그리고 사실상 모르는 사람인 솜이에게 드는 죄책감 때문에 선뜻 알겠다고 하기가 꺼려졌다. 은탁은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확신이 생나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은탁은 얼마전 재준이 자기를 무시하듯 행동했던게 곱씹을수록 짜증이 났었던 터였다.
- ... 그래, 저 집은 재준선배랑 솜이 둘 다 이득을 봤지만 우린 아무것도 이득을 못봤으니 하나쯤 바꿔치는게 어쩌면 공평할지도 모르지, 암. 어짜피 사람들 목걸이 다 똑같이 생겼으니 들킬 일도 없을거야.
은탁은 곧장 재준과 술 약속을 잡았다. 솜이의 출세 기념 용돈을 두둑히 챙주겠다는 핑계로, 솜이가 본가에 내려오는 날짜에 맞춰서 만나기로 했다. 은탁은 약속을 잡았을 때 부터 재준의 집에 들어서기까지 마음이 무거웠다. 어릴 때 문방구에서 사탕 몇 개 훔쳐본 적은 있어도, 남의 인생을 바꿀만한 나쁜 짓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재준의 행복이 배아프기도 했고, 정화가 하이만큼 유명해진다면 남자친구인 자신에게도 득이 될 것이 뻔했기에 무거운 마음을 털어버리고 다시 한 번 맘을 굳게 다잡았다.
- 야, 은탁아. 어서와라.
- 선배, 오랜만이에요. 야, 그 때 푸른 버튼을 누른게 신의 한수였네. 축하해요.
재준은 축하의 의미로 사왔다며 정화가 미리 챙준 도수 높은 위스키를 사들고 가 재준에게 내밀었다. 평소에는 건강 때문에 술을 잘 하지 않던 그였지만, 이제는 팔팔해지지 않았냐는 은탁의 설득에 넘어가 얼음 담은 잔 두개를 찬장에서 꺼내왔다.
- 이제 인생 펴서 좋겠네요. 아- 부럽다. 전에 지하실에 한창 갇혀있을 때 찡찡거리던 재준선배 챙겨주고 다 참아준 것도 다 내가 보살이라 그런거죠. 알죠? 이제 솜이 잘 됐으니까, 저한테 보답 하셔야죠.
- 그래, 맞지. 그땐 미안했어. 너도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텐데 말야. 내가 능력 닿는 데 까지 꼭 보답할테니까, 너무 신경쓰지 말어.
능력 닿는 데 까지 보답한다라... 은탁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재준에게 남아있는 짜증 사이로 아직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이 자꾸 몰려들어, 선배가 자신을 힘들게 했다는 말을 꺼냄으로서 자신 스스로에게 ‘잘못하는 거 아니야. 이건 그냥 복수라고.’라며 세뇌시키고 있던 차였다. 재준의 대답은 은탁을 마음을 더 아프게 하면서도 동시에 편안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의 술에 들뜬 기분으로 위스키를 퍼마시던 재준이 곯아떨어진 후, 은탁은 계획을 실행했다. 바쁜 스케줄로 진작에 잠들었던 하이의 방에 들어가서 침대 옆 선반에 놓여있는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펜던트 대신 달려있는, 가운데가 뚫려있는 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링 한가운데에서 눈알이 확- 튀어나오는 느낌. 마치 목걸이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은탁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더 이상 생각하다간 일이 지체된다고 판단한 은탁은 빠르게 솜이의 목걸이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정화의 목걸이를 그 자리에 고이 내려놓았다. 티가 나지 않도록, 살짝 목걸이 줄을 살짝 헝클어뜨리기까지 했다.
거실로 곧장 나와 당장 이 집을 빠져나가려는 은탁의 뒤로, 재준이 잠꼬대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우리 솜이, 천금보다 귀한 내새끼. 못난 부모 팔자 따라 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세상이 날 그렇게 괴롭히더니, 그 빚을 솜이에게로 갚는구나. 이제 내 인생 어찌되든 상관없다. 솜이만 저렇게 승승장구 잘 살면 좋겠다, 좋겠어. 음냐...
재준의 말 하나하나가 은탁의 발목을 붙잡는 듯 했다. 무겁게 바닥에 붙은 두 발을, 은탁은 눈을 꼭 감고 떼어내 건물에서 나왔다.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어떻게 되었냐는 정화의 연락이 쌓여있었다. 지금은 대답을 하고싶지 않았다. 잘 되었다고, 계획대로 솜이의 목걸이를 잘 훔쳤다고. 알림들을 넘 다 지워버리고 네이버 뉴스를 켰다.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속보 | 20대 남성 B씨, 이웃집 P씨 살해 후 목걸이 절도해 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