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큼 성장해야 이별이 덜 힘들까?

이별 연습

by 역사와동화

오늘 수업이 마지막이래요


“선생님, 저희 오늘 수업이 마지막이래요.”

가회민화박물관 툇마루에 앉아 햇볕을 쪼이는데 아이들이 말했다.(지금은 가회민화박물관이 한옥이 아닌 다른 건물로 옮겨 툇마루가 없다.)

“어, 아직 아닌데....”

일정도 남았고, 학부모님들이 미리 말하지 않았기에 무슨 말인가 했다.

“엄마가 그랬는데...”

단청카드 그리기를 끝내고 민화에 대한 공부도 얼추하고 가회민화박물관을 나가기 전이었다. 화장실에 간 사람도 기다릴 겸, 툇마루에 앉아 있는 중이었다. 가회민화박물관을 나와 북촌을 둘러보고 한상수자수박물관에 갈 예정이었다.(지금은 한상수자수박물관이 성북동으로 이사를 가고 없어서 북촌을 조금더 심도 있게 둘러본다.)

북촌을 둘러보면서도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아이들이 잘 모르고 말했을 거야.'

난 아직 헤어질 준비가 안 되었다.

'아니야. 아이들이 그냥 말했을 리가 없어. 엄마한테 들었겠지.'

괜히 아이들을 보는데 울컥했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이야기를 듣지도 않았는데 이별 인사를 할 수는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어머님들이 그만둔다고 인사를 하셨다. 나는 당황해서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말았다. 아이들과도 제대로 인사를 못했다. 준비되지 않은 헤어짐이라 상처가 되었다. 나는 수업 때 거의 사진을 찍는다. 사진 안에서 꼬물거리는 표정들을 보고 혼자 웃기도 한다. 한참 동안 이 팀 아이들의 사진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 팀은 훈이 어머님이 모으셨다. 훈이는 자폐 성향이 있는 아이였다. 동생이 같이 수업에 참여했고 동생이 오빠를 챙겼다. 나로서는 다른 팀보다 더 신경을 썼다. 때로는 훈이 때문에 수업이 잘 진행이 안 될 때면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근데 훈이 상태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같이 수업하고 싶었다. 훈이가 어떻게 변하는지 조금 더 보고 싶었다. 수업 일정에 따르면 9개월 뒤에 끝날 예정이었다.


나중에 우연히 훈이 어머님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났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오랜만에 뵈어서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아이들 안부도 묻고 싶었다. 그런데,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시간이 꽤 지나 있었는데도, 나는 아직도 그때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나 보았다.


아이들과 이별하는 일은 항상 슬프다. 헤어질 때가 되면 미리부터 이별 연습을 한다. 이 아이들과 얼마 후면 헤어지지, 이제 못 보겠구나,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수업을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헤어지는 것이 당연하건만, 늘 어렵다.

그동안 나는 많은 헤어짐을 어떻게 견디어 왔을까? 헤어지는 게 싫어서 아예 시작 못한 것도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헤어짐의 상처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나만 이러지는 않겠지.



성장한 만큼 이별이 덜 힘들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1년을 넘게 수업했는데... 조직에 속하지 않고, 자주 만나서 수업하는 거는 아니라도, 미리 알려주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끝낼 거라고 미리 말하면 더 잘못할 거란 생각을 하셨던 걸까? 수업을 그만둔다고 미리 말했으면, 아이들에게 더 잘해 주었을 텐데...'

'아이들에게 마무리 인사를 좀더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앞으로 잘 지내라고 한번씩 안아 주지도 못했다.


그러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그렇게 어색하게 헤어지고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났을 때 미안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훈이 어머님이 지쳐 보였다. 아, 훈이를 잘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아픈 아이, 아픈 아이의 형제, 힘들고 지친 자신, 그리고 불편하게 보는 이웃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훈이 엄마가 팀을 주도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같이 수업을 하는 엄마들에게 늘 불편한 마음이었겠지. 그래도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던 아이들이라 많이 봐주긴 했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불만도 더 커졌을 거다. 수업 시간에도 툴툴거리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아이들의 불만이 아이들 엄마에게도 전달되었겠지. 어쩌면 계획된 게 아니라 갑자기 결정된 것일 수도 있었겠다. 그리고 미안해서 이야기를 미루고 못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나는 수업 때 찍은 사진을 보았다. 훈이는 다른 아이들은 서 있는데 바닥에 앉은 모습도 꽤 있고 도망가는 모습도 있고 아이들과 조금 떨어져 있기도 하고 맨 앞에 서기도 했다. 훈이는 화를 내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에는 대부분 웃고 있었다. 어쩌면 훈이도 훈이 어머님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지도 모른다. 나의 실체도 없는 상처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훈이 어머님을 데면데면하게 대한 게 계속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나의 미성숙함이 이별에 대한 상처를 더 키운 건 아닐까.


아, 나중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훈이 어머님을 만났을 때라도 말했으면 좋았을걸.

‘그때 그렇게 갑자기 그만두셔서 제가 마음이 아팠어요.’ 하고. 그러면 왜 그랬는지 알아서 나도 마음이 편해지고, 어머님도 혹시 불편한 마음이 있었으면 마음의 짐을 털어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 웃으면서. 허락하신다면 안아주면서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님도 많이 힘드셨지요. 팀 꾸려서 같이 수업하게 하신 것 정말 감사드려요.’

다음에 만나면 꼭 안아드리고 말해야겠다. 나도 딱 고만큼만 성장했다. 조금더 성장하면 이별이 좀더 쉬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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