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일찍 알수록 일찍부터 행복하다

감정과 생각 표현 2

by 역사와동화

친구랑 헤어지기 싫어 수업에 온다


“현정이가 학교를 옮기는 바람에 수업을 못하게 되었어요.”

그만두기 전 현정이 어머님이 현정이와 정중하게 인사를 하셨다. 현정이는 입을 쑥 내밀고 인사도 어정쩡하게 했다. 현정이도, 다정한 모녀의 모습을 못 보게 된 것도, 많이 아쉬웠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데 며칠 뒤, 연락이 왔다.

“다시 수업하기로 했어요. 현정이가 수업을 하겠다고 너무 울고 난리를 쳐서 상황은 힘들지만 하기로 했어요. 현정이가 역사 수업을 좋아해요.”

이 얘기까지만 들으면 내 수업이 너무 좋은가보다,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부분이 아주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가끔은 확인 받고 응원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 그래서 10%쯤은 내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10%가 부족해서 완결되지 못하는 것들도 많으니까.


현정이의 과격한 행동의 90%는 진희를 향한 것이었다. 현정이는 진희를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진희랑 수업을 같이 하고 싶어서 자기 감정과 생각에 충실한 행동을 했다. 다음 수업에 와서 진희를 만나 헤어진 연인을 만난 듯 좋아했다.

내가 봐도 진희는 매력적이다. 급하지 않고 생각이 깊다. 말이 많지 않으면서도 다정하다. 쓸만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머리도 좋다. 학교 공부도 잘 한다고 한다. 성숙하면서도 자기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는 아이였다. 이성이 더 발달한 아이랄까.

그에 비해 현정이는 감성이 발달한 아이였다. 장래 꿈은 만화가이다. 만화로 쓱쓱 표현을 잘했다. 글을 쓰면 논리 전개가 조금 어설펐다. 그림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게 더 쉬운 아이였다.


진희도 매력적이지만 나는 현정이의 순수함에 반하고 있었다. 현정이는 좋으면 그냥 좋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친구가 자기보다 뭔가를 잘해도 주눅들지 않았다. 상대방이 칭찬받아도 같이 좋아해 주었다. 조금 느릴 때도 있지만 끝까지 자기의 생각을 표현했다. 현정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아는 아이 같았다.

어쩌면 현정이가 기질적으로 선하게 태어나서 일수도 있지만, 좋은 어머니에서 비롯된 부분도 많은 것 같았다. 현정이 어머니는 현정이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칭찬을 자주 했다.

현정이를 보며 속으로 말했다

‘현정아, 너가 참 부러워. 선생님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너무 늦게 알았거든. 너는 어쩜 그렇게 일찍 그것을 깨달았니?’

현정이가 유명한 만화가가 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현정이는 행복하게 살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일찍 익힌 아이들은 일찍부터 행복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어야 행복하다

나는 감정과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잘못했기에 마음 고생을 했고 오랜 시간 스스로 나를 치유했다. 그러고나니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고통과 위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의 아픔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니 다른 사람도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투명해서 조금 더 잘 보인다. 비로소 알게 된 어린 시절의 어리버리한 나를 돌보듯 대하게 된다.


나는 결혼을 하고나서 감정이 더 자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랑은 비난을 하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 잘했다고 해준다. 나를 그대로 보여줘도 안심이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상대방이 뭐라 할까 걱정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의 어떤 것도 다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니 소리도 막 지르고 화도 버럭 내는 성질 드러운 사람이 되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의외로 착하고 순한 것보다 더 매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도 안전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다면 나는 조금더 일찍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내가 감정적으로 성장한 뒤에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무덤덤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나 자신이 힘든 과정을 거쳐 조금더 성숙해진 결과였다.

다행이다. 뒤늦게나마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으니, 어제보다는 조금더 행복에 다가갔다.


이제는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편하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이 불편하거나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이유가 뭔지를 찾고 나 자신을 토닥이고 헤아려준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면 상대하기 싫거나 불편해서 피했다. 이제는 그것이 꼭 나에게 내는 화가 아니라 상대방 자신의 감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아니, 내 마음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예전에는 불편한 마음을 숨겼다면, 지금은 정말로 화가 잘 나지 않는다. 나 때문에 상대방이 화가 났다면 예전보다 더 쉽게 사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계를 느낀다. 어렸을 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고 저절로 위로받고 위로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어른이 된 사람을 보면 나는 여전히 어설프다. 그래서 조심하려고 한다. 착각일 수도 있고, 어쩌면 과하게 내 감정이 개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로한답시고 실수도 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뒤늦게가 아니라, 일찍부터 저절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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