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이 서툰 첫째 아이의 이야기
“규하가 가출하고 싶대요. 엄마 직장 그만두면 안 되냐고 하네요. 너무 놀랬어요. 내가 뭘 잘못한 거 같고.”
규하 어머니에게 카톡이 왔다. 순둥이고 말 잘 듣던 아이니 얼마나 놀래셨을까.
“규하가 엄마에게 말한 것을 기뻐하셔야 해요. 말했다는 건 그만큼 부모를 믿을 수 있고, 해결할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요. 규하에게는 그런 말 하기 어려웠을 텐데 고맙다고 말해 주세요.”
규하는 섬세한 아이다. 하지만 표현이 서툴다. 규하의 동생은 빠릿빠릿하고 자기 의견이 명확하다. 분명 둘이 놀다가 본인이 잘못하고도 울어버리거나 말을 잘해서 형을 억울하게 했을 것이다. 둘이 같이 수업을 했는데, 규하가 표현을 잘못하고 참으면서 속상해하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
자기 표현이 서툰 규하가 엄마에게 저 정도로 얘기했다면 이건 많이 심각한 거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심각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직장을 왜 그만두었냐고 할 수도 있으니까.
규하가 그렇게 얘기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친구 관계가 쉽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일단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규하는 동생과의 사이에서 억울한 게 쌓였을 것이고 사랑을 못 받는다고 느꼈을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는 거 나중에 생각해 보시고요. 동생도 빠지고 엄마와 규하랑 둘이서만 시간을 밀도 있게 가져보세요. 어머님도 직장을 다니시니 시간이 많지 않으실 거예요. 규하도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면 자기를 더 봐 줄 것 같아서 그런 요구를 했겠지만 조금 지나면 엄마보고 다시 직장 갔으면 좋겠다고 할 수 있어요. 30분이라도 온전하게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보세요.”
30분이 짧을 것 같지만,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집중해서 보내는 시간이라면 만만치 않다. 우리가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 하지만, 딴 짓과 딴 생각을 하면서 공간만 같이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어머님은 시간과 마음을 써서 규하에게 그렇게 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어머님이 연락하셨다.
“선생님, 규하가 자기는 사랑을 못 받는 것 같았대요. 그리고 친구 사귀는 게 어려웠대요. 이제는 나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대요.”
규하가 자기의 상황을 멋지게 표현했다. 나무는 규하다.
아이들이 가출하고 싶다고 말하면, 일단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야 한다. 말 안 하고 뛰쳐나가지 않으니 말이다. 가출이란 단어가 아니더라도 지금 힘들다고 어떤 신호를 보내면 놀라지 말고 진정한 마음과 자세로 듣고 수용해야 한다. 진심을 다해 듣기만 해도 반은 해결이 된다. 진심을 다해 들었다면 왜 힘든지 알 거고 거기에서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갑자기 가출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없다. 그 전에 어떤 신호를 분명히 주었다. 그 신호를 알아채는 부모라면 더 큰 어려움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첫째가 말하면 더 심각하게 들어야 한다. 요즘은 둘이 많으니 첫째이자 맏이고 둘째이자 막내인 경우가 많다.
첫째 아이들은 고지식한 경우가 많다. 첫째는 어떻게 보면 부모의 임상실험 대상이다. 부모가 처음 된 사람들이 잘 몰라서 조심조심 교과서대로 키워보는 것이다. 수업도 첫째 애들은 거의 하고 둘째는 건너뛰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첫째는 혜택을 더 많이 볼 수도 있지만, 첫째가 가진 무게를 둘째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보통 첫째 아이는 상황 파악이나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데 비해 동생 특히 둘째는 위기 대응 능력이 뛰어나다. 하긴 세상에 나오자마자 부모의 사랑을 가로막는 위협적인 존재가 자기 앞에 떡 버티고 있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도 그래야 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둘째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을 만나본 결과, 나는 첫째들이 조금 더 안쓰럽다.
부모님들이 첫째를 볼 때랑 둘째를 볼 때 표정이 너무 다르다. 첫째는 근엄한 눈으로 바르게 키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본다. 좀더 잘했으면 좋겠고 못마땅한 게 많다. 둘째는 훨씬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본다. 첫째였으면 혼냈을 일을 둘째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긴다. 둘째가 애교를 떨어서 넘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거의 첫째보다는 둘째에게 많이 웃고 너그럽다. 둘째에게는 기대치도 훨씬 낮다. 둘의 나이 차이는 고작 2~3살일 뿐인데도 그렇다.
어쩌면 이건 아주 자연스런 현상일 수도 있다. 첫째 아이는 부모님도 불안한 상태에서 맞이한 아이고 둘째 아이는 첫째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 조금더 안정감 있고 성숙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를 대할 때 의식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노력을 해서 더 사랑스런 눈으로 보도록 해야 한다. 첫째에게 기대치를 낮추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애를 써야 한다. 애를 쓰지 않으면 저절로 되기는 쉽지 않다.
첫째 아이의 특성을 물리치고 규하가 가출 선언을 하다니! 용기 있다. 규하의 어머니는 참 훌륭하시다. 가출 선언에 엄청 놀라셨을 텐데, 침착하게 아이를 품으셨다. 아빠도 수업에 자주 같이 오셨다. 참 든든해 보였다.
규하가 가출 선언을 할 때, 스스로 자랄 수 있는 나무가 될 줄 알았을까. 규하도 대단하다.